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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un 02. 2023

<몰랐었네>


오늘은 피렌체 더몰아웃렛 가는 날이다.

아침 9:10에 출발하는 셔틀을 타려고 호텔에서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 여행 중 나의 관광 루틴은 9 to 5. 오전 9시에 숙소에서 나와서 저녁 5시까지 돌아오는 규칙을 정했다. 방에 돌아오면 ‘오늘 미션 컴플릿!‘을 속으로 외치며 지친 내 발목과 허리를 쉬게 해 준 후 샤워를 하고, 근처 현지인들이 가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셔틀 정류장에 도착하니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요즘 관광지에서 중국인들이 안 보여서 그런지 꽉 찬 셔틀버스는 거의 다 한국인들이었다. 와 근데 버스에 와이파이기 잡힌다. 와이파이 이름도 더몰아웃렛. 이거 지금 여기서 나 혼자만  아는 건가 하면서, 뒷사람한테 알려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여기서 내가 나이로 몇 손가락 안에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만히 있기로 한다.


한 시간쯤 달린 후 목적지에 도착한 버스는 구찌 매장 바로 옆에 우리를 내려줬다. 내 계획은 원래 프라다를 먼저 갔다가 구찌로 가서 넥타이와 스카프를 사는 것이었다.


버스가 내려준 곳에서 제일 가까운 매장으로 들어갔다.

스카프 구역에 갔더니, 국내에서 보기 힘든 채도의 베이지, 그레이, 블루 등등 다양한 색상의 스카프들이 이 사람 어깨에 걸쳐졌다가 저 사람 어깨에 걸쳐졌다가, 다시 쇼케이스 유리 위로 던져지고 있었다. 던져진 색상 중에 쨍한 파랑을 집어 들어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이 확 산다. 이건 내 거다!

재빨리 결제하고 넥타이 구역으로 이동했다. 아빠랑 남편 넥타이 세 개를 골랐다. 개당 100유로인데, 여기서 12.5프로 텍스리펀드까지 받으면, 한국 백화점 입점 브랜드 보다 더 싸다. 게다가 예쁘다!


여성들이 제일 북적이는 핸드백 구역을 쓱 지나가다가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무난하게 아무 데나 들 수 있는 검정백 발견. 가격표를 보니 990유로. 텍스리펀드 받으면 정가의 50프로도 안된다. ‘아 나 프라다 가야 되는데’ 하면서 나를 달래 보지만, 눈도 발도 안 떨어진다. ‘이럴 때는 결제가 답이지’하면서 나를 설득시킨다. 구찌 매장에서 세 번째 신속 결제를 마친다.


한 손 가득 로고 찍힌 큰 쇼핑백을 들고서, 프라다로 향했다. 프라다에서 딱 한점 남은 날 기다리는 백은 오렌지와 카멜을 섞어놓은 듯한 색깔에, 몸통의 반 윗부분은 굵은 위빙으로 엮여 있는 작은 백이었다. 이것도 오십 프로 이하의 가격이다.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충동구매 할 때 느껴지는 설렘과 짜릿함이 느껴지려 한다. 결제 구역으로 이동해서 직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Ms. sorry for that.. 카드 한도 초과란다.

아.. 내가 왜 호텔에 다른 카드를 두고 왔을까.. 속상한 나머지 쇼핑 욕구는 완전히 꺾여버렸다.


숙소로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다른 매장들은 쳐다도 안 보고 셔틀 정류장을 찾아 나섰다. 피렌체로 돌아가는 셔틀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서, 오늘 나의 낯선 모습을 생각해 본다.


나는 평소 내가 명품이라며, 명품백은 사치품일 뿐이라며,

천가방만 들고 다녔다. 내가 가진 명품백들은, 뉴욕에 사는 언니가 디자이너 친구들이 샘플세일에 불러서 몇 개씩 샀다면서, 두어 개 준 게 있어서 행사용으로 쓰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기 아웃렛을 알게 되었고, 여기는 하루 날 잡아서 구경삼아 가봐야지 했었다. 그리고는 카드 한도 초과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되었다.


오늘 나는 내 안의 <new me>를 발견했다.


음.. 나도 명품백 좋아하는구나.. 나도 여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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