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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Mar 05. 2024

언니가 온다 1


새벽부터 이불과 침대 매트리스 시트, 베개 커버를 벗겨 세탁기에 넣고, 평소에는 쓰지 않는 섬유유연제까지 넣어 이불빨래를 하고 있다. 이번 주에 후각과 미각이 예민한 언니가 뉴욕에서 오기 때문이다.

언니는 뉴욕에서 산지 30년이 넘었다. 그 세월을 몇 마디 단어로 요약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언니였기에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고는 할 수 있겠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었다.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을 채우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빠가 개원하시기 전에 일하던 병원 의사들과 유원지에 놀러 가실 때 언니를 데리고 갔었다고 한다. 그때 언니는 대여섯 살 정도였는데, 가르친 적도 없는 한글을 혼자서 다 익혔었고, 유원지에서는 역시 혼자 배운 에델바이스 영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이야 워낙 조기 영어교육이 이루어지니 이런 게 흔한 일이겠지만, 반세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어른들이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일곱 살까지도 한글을 잘 못 읽어서, 엄마가 아빠한테 “쟤는 미련한가 보다”라고 했었다고 한다. 그 말에 아빠는 “늦게 트이려고 그런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늦게 트인다는 시기가 나는 요 근래 몇 년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언니는 타고난 머리에 강한 성격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야 마는 추진력이 있는 행동파였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튕겨져 나가 버렸고, 좋은 대학은 못 가게 되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던 동안에 여권만 나오면 되는 시기였을 때, 미국 교포와 소개팅을 하더니 한 달 사귀고 결혼을 하겠다고 집에 선포를 했다. 집안은 발칵 뒤집어지고, 언니의 남자친구가 사기꾼 아니냐는 부모님들 말에 준재벌집 아들인 언니 남친은 한국에 있는 부동산 등기부부터 호적 등본까지 다 떼서 언니 편에 보내왔었다. 그 서류들을 보고 부모님은 안심이 되었는지 결혼을 허락하고, 언니 남친의 미국 부모님들이 나와서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함 들어오는 날 언니가 받은 함에는 각종 보석들 세트와 명품 옷과 신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90년대 초반에 버버리 트렌치 코트에 구찌 신발은 아직 대중들에게 친숙한 물건들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함을 열어보고 다들 놀라시고, 부모님은 흡족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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