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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Mar 05. 2024

언니가 온다 3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몇 년 뒤에 언니는 맨해튼에서 브룩클린으로 이사를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려고 반년 동안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이었는데, 그때 맨하탄의 부동산은 원래도 비쌌지만 부동산 상승기에 있었던 것 같다. 맨하탄의 집을 팔고, 맨하탄에서 지하철역으로 네 정거장 떨어진 브룩클린으로 이사를 오면서 모기지(mortgage loan)를 받아 4층 짜리 작은 주거용 건물을 사고 남은 돈으로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었다.

가게 자리만 6개월을 보러 다녀서 그랬는지 프렌치 레스토랑은 손님이 북적북적했었다. 욕심이 많은 언니는 몇 년 뒤에 한국 레스토랑과 미국식 레스토랑까지 열어 동시에 레스토랑을 세 개나 운영하게 되었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멕시칸들이 많기도 했고, 콜롬비아에서 이민 온 막역한 변호사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언니는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친구들과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 유럽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제일 부러워했던 여행은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이었다. 현지인 쉐프와 가이드로 구성된 여행팀이 언니와 친구들을 짚차와 비행기를 태우고 다니면서, 투어 스팟에 텐트를 치고 요리를 해주면서 관광을 시켜주는 시스템이라고 했었다.

프랑스를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언니는 또 불어 공부에 불이 붙어서 파리에 어학연수를 몇 주 동안 가 있기도 했었다. 언니는 자기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를 했었으면 좋은 대학에 갔었을 거라고 우스갯 소리를 했었다.


미국 경기 불황시기에 언니는 두 개의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프렌치 레스토랑 한 개만 남겨 운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 나갔다. 다행히 가게 주인이 좋은 사람이어서 그 시기에 월세를 반씩만 내라고 했었기에 겨우 운영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이 정말 경제 강국이라고 느낀 것은 팬데믹 말미에 두 세 차례에 걸쳐 자영업자들에게 코로나 지원금을 지급해 줬는데, 그 금액이 언니의 경우 일억이 훨씬 넘는 액수였다고 한다. 그걸로 팬데믹 기간의 손실을 메꾸고도 많은 금액이 남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이어진 엔데믹의 보복 소비로 다시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복작복작해졌다고 한다.

작년 초부터인가는 파리 유학파 디저트 선생님한테서 베이킹과 디저트를 배우더니, 타고난 감각으로 예쁘고 맛있는 쿠키, 케이크, 각종 디저트를 만들어서 자기 레스토랑에서 팔고 있고, 꽤 인기도 있는 듯해 보였다. 이 내용은 언니 인스타를 보고서야 알게 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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