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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Mar 09. 2024

언니가 왔다 1

세미 콜론의 의미


그제 새벽 여섯 시 반에 언니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일 년 넘게 소원하게 지냈기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입국장 게이트 앞에서 앉아서 기다리는데 졸음 때문인지 뭔지 자꾸 눈물이 찔끔찔끔 눈가로 새어 나왔다. 저 안쪽에서 츄리닝 바지에 복고풍 안경을 쓰고, 탈색으로 밝은 금빛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빛나는 언니가 걸어 나왔다. 평생 운동을 해서 다부진 몸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니 그냥 작은 동양 여자로 보였다. 일어나서 언니한테 다가가는데 눈물이 자꾸 볼을 타고 내렸다. 언니가 놀란 눈으로 “왜?” 하는데, 그냥 ”반가워서 “라고 답했다. 언니한테 하소연하고 싶지만 말 못 할 일들이 잠시 떠올랐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어떻게 지내고 살았는지 한참 얘기를 했다. 작년에 뉴욕은 비가 칠십 며칠이나 와서 레스토랑에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는 짐을 풀고 체력 좋은 언니는 목욕탕에 가서 세신사한테 때도 밀고 마사지까지 받고 왔다. 좀 쉬면서 내가 끓여준 시금치 두부 된장국에 숙주나물, 콩나물, 갓김치, 굴비구이를 막 한 흰밥에 맛있게 먹었다.

언니가 나오면 나는 수행비서 노릇을 하기에 언니를 차에 태우고 오후 스케줄인 강남 피부과로 이동했다. 언니는 담당 실장님이 입이 찢어지게 결제를 하고 VIP 라운지로 이동해서 서너 시간 동안 시술을 받았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간다고, 나도 실장님이 권하는 시술을 몇 가지 받았다. 내 시술이 끝나고도 '언니는 인조인간이 돼서 나오는 것인가?'라고 할 정도로 기다린 다음에야 언니가 나왔다. 얼굴, 목, 기타 부위를 살펴보니 '확실히 돈이 좋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딸아이는 대중교통을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거의 두 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금요일인 어제는 딸아이와 언니가 딸의 남친이 일하는 양고기집을 예약해서 가기로 했다. 나는 그 시간에 서울에서 로스팅 고급 실기시험이 있어서 같이 가지는 못했다.

시험이 끝나고 집에 오니 언니는 시차 때문인지 잠들기 직전이었다.


오늘 새벽 세시에 나도 언니도 잠이 깨서 딸아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재작년에 세 군데에 타투를 했다. 다 푸른 염료로 했었는데, 손가락 사이에 무슨 음표 같은 것과 등뒤 어깨죽지에 돛단배 모양과 발목 안쪽에 형체 모를 타투를 했었다.



언니가 딸아이 손가락 사이에 있는 타투가 <세미 콜론>이라고 하면서, 그 뜻이 "자살 방지"를 의미한다고 했다. 언니가 딸아이에게 "너 그 뜻을 알고서 한 거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하.. 나는 눈 뜬 장님처럼 그런 것도 모르고 타투 좀 그만하라고 타박을 했었는데..

언니는 아이에게는 아는 척을 하지 말고 알고만 있으라고 하면서 얘기를 해줬다.


친구들과 거제도 여행을 가는 언니를 광명역에 데려다주고 와서 정신없이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아이가 공부한다고 카페에 간다고 준비 중이다. 나는 “공부를 왜 해?” 하면서 덧붙여서 “이모 하고는 말이 통하고 엄마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 이거지?”라고 심통 아닌 심통을 부려본다. 그러자 아이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엉, 엉” 이렇게 답을 한다.  


네 마음은 아직도 그렇게 바닥으로 가라앉는 중이었는데, 나는 그걸 다 헤아려주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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