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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Mar 14. 2024

언니가 왔다 2


남편의 출장

사소한 일이 불씨가 되어 서로에게 폭발했었기에 며칠 동안 남편과의 분위기가 냉랭해졌었다. ‘저 인간 얼굴 안 보고 사는 날이 내 인생 해방의 날이다’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언니도 집에 와 있는데, 언니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으니 더 꼴도 보기가 싫어졌었다.


남편은 급하게 잡힌 베트남 출장을 간다고 오늘 새벽 세시 반에 깨워달라고 했다. 알람이 울리기 전 삼십 분 전에 나는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마시고 나서 버릴 수 있는 종이컵에 얼음을 한가득 담아 아이스 라떼를 만들어 뚜껑을 닫고, 혹시나 커피가 셀까 봐 플라스틱 투명 컵 안에 종이컵을 넣었다.

알람 소리에 일어난 남편은 스트레쓰로 잇몸이 부었다며 세수만 하고, 츄리닝 복장으로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트렁크를 들고 집을 나섰다.

회사에 문제가 터져서 그걸 해결하느라고 부쩍 얼굴이 야위었다. 현관을 나서는 남편의 몸 상태가 걱정이 되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고 했었는데, 남편도 자기 몸이 안 좋아서 마음이 약해졌는지 작별 인사를 하는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잘 갔다 와라 내 평생의 웬수야’



언니의 쇼핑

내 방에서 자고 있는 언니는 이제 시차에 적응이 되었나 보다. 내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스탠드 하나를 켜고 침대 옆 소파에 앉아 이러고 있는데 미동도 없이 자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미제“를 좋아했던 나는 신발이나 옷을 직구하면서 배송지를 언니네 집으로 적곤 했었다. 그것들을 받아서 입고 신었을 때, 미쿡 물건만의 색상과 디자인이 여기 한국 거리에서는 차별화되어 보였기 때문에 직구를 좋아했었다. 중간중간에 언니가 내 택배를 보내주기도 했었고, 거의 매년 한국에 나오는 언니의 트렁크에서 내 쇼핑 품목들을 풀어보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딱히 주문하고 싶은 아이템이 없었다. 작년 하반기에 옷을 싹 정리하고 버려지는 옷 꾸러미를 보면서 느낀 바가 있기도 했었고, 미쿡 상표를 단 물건들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대비되게도 언니는 이삼 년 전부터 한국에 나올 때마다 중국 보따리 장사꾼처럼 한국 물건들을 싹쓸이 해 가고 있다. 필요한 물품 목록들을 미리 작성해 와서는 올리브영의 핫 아이템들을 나에게 불러주어 수십만 원을 결제하게 하고, 쿠팡에서도, 기타 다른 먹거리를 파는 싸이트에서도 수십만 원씩을 결제하게 한다. 물론 가기 전에 다 현금으로 정산을 해주고 간다. 보통 그 금액이 백만 원이 넘어간다.

지난주에 언니는 딸아이와 함께 제법 규모가 큰 동네 다이소에서 십만 원어치 물건을 플렉스 하고, 그 옆에 유니클로에 들려 무슨 콜라보 컬렉션을 이것저것 사 왔다. 나도 전에 다이소에서 수업 관련 물품들을 십만 원 정도 사봤었는데, 장바구니 3개가 필요했었다.


어제 언니는 전에 다니던 피부과에 남아있는 금액을 쓰기 위해서 갔다가 몇 배를 더 결제하고 몸을 리프팅해 주는 시술을 받고, 그 시술 예약을 몇 차례 더 하고 왔다. 우리 집 전담 미용실에도 들려 염색과 클리닉을 하고, 또 다른 단골 가게에서 패디큐어와 발 관리, 네일을 했다.

이런 종류의 미용 관련 시술이 한국이 훨씬 싸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 손이 야무져서 결과물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밖에서 뭐 하나 하고 집에 올 때마다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한국 거 너무 좋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삼 년 전쯤엔가 언니가 파리에 갔을 때, 주변에 앉아있는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이제 한국말로 남 욕 못하겠다고 했었다. 요즘은 그런 현상이 더 심해져서 얼마 전에 콜롬비아 시골 마을에 갔었는데, 자기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현지인들이 반가워하면서 한국말을 건네왔다고 한다.

K pop과 K drama 덕분에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니 어디 나가면 어깨가 자연스럽게 펴진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오랜 세월이 걸렸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어릴 때부터 옆 사람과 겨뤄야 하는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가 좀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타인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좀 더 관대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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