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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Apr 29. 2024

거짓말


새 학교에서 수업하는 교실은 음악실이다. 각종 악기들이 뒷자리에 정열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항상 악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곤 했었다. 특이하게도 이 학교는 수업 시간이 80분으로 다른 학교의 두 배이다. 어른도 80분 앉아 있으라고 하면 힘이 든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십 분씩 주게 되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뒤로 우르르 몰려나가 큰북이며 꽹과리며 주로 큰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저학년 반에는 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 조금 불편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소음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두 귀를 틀어막고는 “시끄러워서 나 너무 힘들다고.”라고 나에게 호소를 하곤 했었다. 아이들을 제지해도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더 꽹과리를 크게 두들겼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쉬는 시간에 차라리 핸드폰을 보라고 해서 겨우 쉬는 시간에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학교 담당 선생님이 강사 단톡방에 쉬는 시간에 핸드폰 사용 건에 대한 학부모 민원이 들어왔다고 하면서,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라고 하셨다.


다음번 수업에 들어가서 나는 사용하라고 했던 핸드폰을 다시 쓰지 못하게 하려면, 마땅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판에 <핸드폰 금지>라고 쓰고 아이들에게 학교에 민원이 들어와서 쉬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얘기를 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아이가 누가 전화를 한 거냐고 묻길래 그건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일학년 여자 아이가 자랑스러운 듯이 “우리 엄마가 전화했어.”라고 말을 했다. 왜 저런 말을 하나 황당했지만 더 이상 그 건에 대해서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담당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 어머니가 전화해서는 <내가 아이들을 앉혀놓고, 누가 학교에 전화했는지 손을 들게 했다>는 것이다. 전날 있었던 얘기를 해주면서 그 스토리 자체가 너무 유치하지 않냐, 그리고 나는 누가 전화했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담당 선생님은 그 어머니에게 내용 전달해 드리겠다고 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담당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 아이가 집에 가서 거짓말한 것을 얘기했더니, 그 어머니는 사과는커녕 그럼 왜 칠판에 핸드폰 금지라고 써서, 다른 아이가 누가 전화했는지 물어보게 해서 자기 아이가 우리 엄마가 전화했다고 얘기하게 만들었냐고 말했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이런 대화는 끝이 없는 거고, 나한테서 사과 전화를 받고 싶으신가 본데, 나는 전화할 생각이 없다. 기분 나빠서 취소한다 그러면 취소하라고, 수업 취소하면 나는 더 좋다고. 걔가 얼마나 수업을 방해하는지 아냐고. 하면서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쓰도록 허락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담당 선생님은 본인이 어머니와 통화해 보겠다고 했다.


오후에 다른 학교 수업을 갔다 왔다. 하루종일 그 어처구니없는 아이의 거짓말과 그 어머니의 무매너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후 늦은 시간에 다시 담당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 어머니는 수업을 취소하지 않고 계속 듣고 싶다고 하면서 이번 일로 자기 아이가 나한테 미움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된다면서, 자기가 아이 말만 듣고 그랬던 점은 죄송하게 됐다고 했다고 한다.

사과를 하려면 나한테 직접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중간에서 애쓴 담당 선생님을 생각해서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런 사과를 받네요. 하면서, 하루종일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고, 이거는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변호사랑 상담을 해야 하나 하고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하고 싶으셨는지 담당 선생님은 그 어머니가 죄송하다고 꼭 좀 전해 달라는 말을 한 번 더 하셨다.


일 학년 짜리가 어떻게 그런 앙큼한 말을 지어낼 수 있는지, 그 어머니의 언행은 또 어떠한지 상식선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다. 수업 취소해 줬으면 내가 이렇게 학교 가기 싫은 마음도 안 생겼을 텐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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