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tlionheart May 19. 2024

강남 갔다 오는 길



자연과 함께 나이가 들면서 또, 아이가 아프면서 ‘많은 욕심을 내려놓고 살게 되었었다.’라고 생각했었다.


최근에 "원 베일리" 리뷰 영상을 보면서 ‘학창 시절에 바로 옆 신반포 한신 3차에 살았었는데..’ 삼십 년 사이에 천지가 개벽을 했구나 싶었다. 가끔 반포대교를 건널 때 보면 한신 3차는 아직도 재건축 전인 듯 보였고, 고등학교 때 지어졌던 그때 처음 들어 본 ‘오피스텔’이라는 ‘씨티21’도 여전해 보였다.

그 당시 아빠의 선택은 반포 아파트를 팔아서 남의 건물에서 운영하고 있는 병원 근거리에 새로 병원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은 엄마가 아파트 파는 걸 반대를 많이 해서 아빠랑 많이 싸우셨던 것 같다. 병원을 지을 때도 엄마는 아래층을 상가로 만들어서 세를 줘야 된다고 주장을 했었는데, 아빠는 건물을 통째로 병원으로 만들고 맨 위층을 살림집으로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재테크에는 엄마가 좀 더 센스가 있었다는 것으로 판정이 내려졌다.

나는 ‘어차피 내 것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입장으로 지냈었다.


재작년부터 옮겨 다니는 피부과는 강남 대로변에 큰 건물을 네 개 층이나 통째로 쓰고 있다. 건물 일층에서는 발렛 파킹을 해주는데, 내 차가 출차되기를 기다리다 보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차종들을 볼 수 있다. 평소 차에 대한 욕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차는 이동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금요일에 예약한 시술을 받은 후에 일층 벤치에 앉아 출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피부과에서 내려온 내 또래의 두 명의 여성이 같이 앉아 있었다. 그녀들의 차가 먼저 나와서 두 명이 한 차를 같이 타는데, 차 뒷모습이 예쁜 벤츠 SUV였다. 그때 약간 내 감정선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런 내가 당황스러웠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 강남 붙박이로 살았던 친구들 집이 37억이네 어쩌네 해도 흔들리지 않는 나였는데, 그깟 벤츠 타는 중년 여인들 뒷모습에 평정심을 잃다니.. 이런 거 자체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은 익숙한 나머지 계속 멍을 때리면서 운전을 한 것 같다. 큰길에서 우회전하여 우리 단지로 들어서자 초록이 가득한 나무들이 길을 따라 한아름이다. 바로 또 우회전하여 차단기를 지나가니 눈에 익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집이다!’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진다.


속세의 욕심에 대한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나는 다시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연과 함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