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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ul 21. 2024

일요일 밤에 이런저런 생각


글은 쓰고 싶은데,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말을 누군가가 속으로 할 것만 같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감성은 무뎌져 가고, 책을 못 읽으니 사고의 깊이는 점점 낮고 좁아지고 있다.

그래도 쓰고 싶으니까 오늘도 쓴다.




어제 오랜만에 아빠를 뵈러 갔었다. 딸아이가 갑자기 할아버지댁에 가자고 해서 금요일에 미리 연락을 드리고 토요일에 갔다. 엄마는 낮에도 잠을 많이 주무신다고 들었었는데, 그날도 우리가 온 지도 모르고 깊이 잠에 빠져 계셨다.

그 지역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오래되고 유명한 만두집에 딸아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아빠와 우리 세 가족만 만두집에 가게 되었다. 고기만두, 찐만두, 물만두, 튀김만두를 종류별로 시키고 잡채밥을 추가로 더 주문했다.


편하게 이런저런 주제에 대해 대화할 상대가 없는 아빠는 거의 한 시간 동안을 당신 관심사-주로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휴가 기간에 아빠 혼자서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싱가폴에 가신다고 하셨다. 몇 십 년 만에 다시 가보는 곳이라 예전 여행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하셨다.

수영복은 있으시냐고 여쭤봤더니, 수영장 갈 일이 없으셔서 십여 년 전에 사놓은 수영복이 있다고 하셨다.

수영복은 매년 유행이 바뀌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이 같은 해에 공존하는 까다로운 옷이다. 남성 수영복도 은근히 유행을 많이 타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할아버지(아빠) 혼자서 올드한 수영복을 입고 호텔 수영장에 계실 모습을 상상하니..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필드로 향했다. 그 붐비는 토요일에 십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스타필드에 진입하고 주차하는데 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피곤한 딸아이는 계속 자겠다고 해서 차에 남겨두고 우리 셋은 주차장을 빠져나와 매장들이 있는 지상층으로 향했다.


안다르와 나이키 매장에 들렸었는데, 나이키에는 수영복 자체가 없다고 해서 안다르 매장으로 향했다. 안다르에서는 올해 새롭게 수영복을 출시했는데, 디자인과 색상이 예뻐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싸이즈가 품절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빠 수영복 사러 왔는데 아빠 거는 안 보고, 나는 아쉬운 마음에 들어가지도 않을 M싸이즈 인디핑크 수영복을 들고 피팅룸 앞의 긴 줄에 서 있었다. 줄이 길었길래 다행히 내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영복을 제 자리로 갖다 놓고 아빠와 남편이 서성이고 있는 남성 수영복 코너로 갔다.


세련되고 톤 다운된 약간씩은 색 차이가 나는 블루 수영복들이 내 마음에도 아빠 마음에도 들었다. 덜 진한 블루와 약간 진한 블루 수영복을 L싸이즈로 골라서 아빠에게 피팅룸에서 입어 보시라고 했다. 아빠는 내 맘에도 쏙 드는 덜 진한 블루 수영복을 고르셨다. 세일 중이라 여행 가서 입으실 여름 점퍼도 보시라고 했더니, 아빠는 흰색을 고르셨다. 계산대에서 수영복과 점퍼를 남편이 결제했다. 금액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서 아빠 팔짱을 끼면서 내가 “사위, 고맙네”라고 하자 아빠와 남편이 웃음을 터뜨렸다.


평생 일을 하시고도, 건강 관리를 잘 하셔서 지금도 일을 하시는 아빠 덕분에 딸인 내가 부모님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게 해 주시니 ‘이것도 내 복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남편이 “나는 우리 아버지 돌아가셔도 안 울 것 같은데, 아버님 돌아가시면 울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두어 번 있다.

우리 부부가 사이가 좋을 때나 이혼 직전의 위기일 때나 아빠는 남편한테 싫은 내색 한 번을 안 하셨다. 오히려 남편 건강을 챙겨주시고, 면세점에서 가격이 꽤 나가는 양주들을 여행 다녀오실 때마다 사 오셔서 남편이 회사 다니던 시절 상사들에게 선물해 주라고 챙겨주셨었다. 또, 명절 때마다 시댁에 선물을 갖다 드리라고 준비를 해주셨었다.

우리 아빠는 살아있는 부처님이 아닐까 싶었었는데, 그게 다 딸인 나를 위해서 참고 또 참으시며 사위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이었다.

남편도 그런 우리 아빠의 마음은 느끼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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