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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직업

by hotlionheart


작년 가을에 읽던 책을 다시 펼쳐 보게 되었다. 삼분의 일쯤 읽었으려나.. 류마티스 내과 여성 의사가 쓴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다.

특별한 원인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진단을 받게 되고,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진료과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의사는 생(生)과 사(死)를 눈앞에서 매일 겪어내야 하는 어려운 직업이다.


딸아이를 수술해 준 친구(L)가 있다. 고등학교 이과반 2년 동안 같은 반이었고, 대학교 때도 가끔 서로의 대학교 학보를 주고받았었다. 내가 직장을 다닐 때 그 친구는 레지던트 수련 중이었는데, 그때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거의 이십 년 간 연락이 끊겼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L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의 전화에 반가워서 나는 한참을 떠들어댔는데, 핸드폰 건너편에서 한동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 잠깐 졸았어.”라는 친구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는 얼마나 고된 일상이었을지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사느라 바빠서 소식이 끊기고, 나는 아이를 낳고 전업 주부로 살고 있었다. 십 년 전 어느 날 <여의열전>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 친구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책을 읽으며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사진과 함께 일하고 있는 병원과 진료과가 나왔다.

그 친구는 간 이식 분야에서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는 의사가 되어 있었다. 딱히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알고만 있었다.


2016년 4월에 다른 친구가 김포공항 화장실에서 L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우리는 카톡 단톡을 하게 되었었다. 그렇게 해서 서로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4월 말에 갑자기 딸아이의 복통이 시작되었고, 동네 병원에서 CT를 찍고 종양이 발견되었다. 아빠가 아빠의 모교 병원 어느 교수님께 CT결과를 들고 가보라고 했지만, 진단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때 L에게 전화를 했더니, 빨리 CT 결과를 가지고 자기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췌장 보는 교수님께서 바로 진단을 내려주고, 딸아이는 응급 입원을 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입원 후 며칠이 지나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실에는 L도 들어가서 딸아이 간 수술을 해줬다는 것을 수술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딸아이 병간호를 하던 어느 해에 L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인터뷰를 했던 기자가 일과 육아의 양립에 대해 물어봤었던 것 같다.

L은 해외 학회에 가는 비행기에서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었다고 답했다. 한참 엄마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을 놔두고 24시간 잠들지 않는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야만 했을 그 인생이 같은 엄마로서 공감이 되면서 마음이 아팠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L의 그런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었고, 내 딸도 다시 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밥 한 번 산다고 한지가 벌써 팔구 년이 지났다. 이제야 시간 여유가 생긴 L과 지난달에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어린 중증 환자들 얘기가 나오자 L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떨리는 목소리로 안타까운 탄성을 냈다. 그렇게 여린 마음으로 어떻게 삼십 년을 버텨왔을지, 하루하루가 지옥과 천당을 오갔을 것 같았다.


너의 그 숭고한 희생으로 누군가의 부모가, 누군가의 자식이 다시 숨을 쉬며, 새 희망을 품고, 아픔을 이겨나갈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고 존경한다.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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