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제일 싫어요>

by hotlionheart


설이든 추석이든 빨간색으로 칠해진 명절 연휴 날짜를 세어 볼 때면 어김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혀온다. 근 25년 동안 느낀 증세다. 이런 게 정신의학과에서는 <화병>이라고 한단다.


결혼하고 맞은 첫 명절날 시어머니의 몸빼 바지로 갈아입으라는 명령에 난생처음으로 일바지를 입고서 다 쓰러져가는 구옥의 좁디좁은 마루에서 쭈그리고 앉아 허리 끊어져라 전을 부칠 때, 남편은 내가 싫어하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술집을 전전하며 전화는 받지도 않았었다. 밤 열두 시가 한참 넘어 기어 들어온 남편은 차마 여기에는 서술할 수 없는 몰골로 들어와 거짓 변명으로 일관했고, 남편 하나 보고 소위 그 조건이라는 것은 일체 외면하고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결혼했던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그 새벽에 택시를 잡아타고 의정부 시집에서 송파구 신혼집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왔었다.


그날 오후에 나를 따라온 남편은 적반하장 격으로 시어머니에게 사죄 전화를 드리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협박을 했고,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었던 나는 병신같이 사죄 전화를 했었다. 그때 헤어졌으면 26년간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느라 내 몸과 정신이 이리도 피폐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하며, 그저 못난 나 자신을 책망할 뿐이다.


매년 명절에, 생신에, 모임거리나 일거리를 만들어 시댁에서 불러제낄때마다 하녀 취급받으며 온갖 말침을 홀로 받아내면서, 집에 오면 타이레놀도 어찌할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었다. 시집살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정서적인 학대였다.


못 배우고 경제력 없는 시집 사람들의 심보는 고약하기가 견줄대가 없다.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인가. 나름 원인 분석을 하느라 머리 싸매고 괴로워했었다. 그렇게 답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던 어느 날 문뜩 든 생각은 그 사람들은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인 거다. 내가 어찌한다고 나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년에 20년 육아를 마치고 학교 강사일을 구해 주 5일 일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시어머니가 설 명절에 고이 접은 편지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용돈과 함께 말이다. 집에 와서 읽자마자 북북 찢어버렸기에 정확한 내용은 생각이 안 나지만,

대충 ‘그동안 고생 많았다.. 다시 일하게 되어 좋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당신 아들 혼자 버는 게 안쓰러워서 딸아이 다섯 살 때도 나 보고 피부미용 관리라도 배워서 돈 벌으라고 하신 분인데, 본인 소원성취 했으니 즐거우셨나 보다. 당신 자식이었으면 석사까지 공부한 사람한테 피부미용 배우라는 말이 그리도 쉽게 나왔을까 싶다.


시리즈 1,2,3,....,200가지가 넘지만 이거 하나 쓰는데도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밑 근육에 경련이 일어난다.


부디 자기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줄 알길 바란다.



keyword
이전 15화<Irene (아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