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어릴 때, <독박육아>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에 육아를 도와줄 사람 하나 없었고, 남편은 항상 회사 업무와 회식으로 주말부부처럼 살았었다.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를 씻기고 나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날의 미션을 마치게 된다. 그때 마시는 와인 한잔이 하루의 노고를 위로해 주곤 했었다.
달달한 모스카토부터 시작해서 보르도 와인까지, 아빠 집에서 들고 오는 와인들이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되곤 했었다.
그렇게 매일 한두 잔씩 마시면서 빨개진 얼굴로 헛웃음을 짓기도 하고, 술김에 어린애한테 넋두리도 하는, 저녁시간 특정 < 불량엄마>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인가 그날도 여느 날처럼 전날 마시던 와인병을 꺼내서 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엄마 또 술 마셔? “ 하는 거다.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아. 내가 이러면 안 되겠구나. 아이에게 나는 술 마시는 엄마로 기억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은 와인을 싱크대에 버리고, 그날 이후로는 평소에는 와인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후로는 가족 생일이나 기념일 외식 때만 한잔씩 먹게 되었다.
요즘 커피 외에 나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와인이다.
아이도 지난한 병원투어를 마치고 건강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성인이 되었고, 온갖 가족 이슈들도 수면 아래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상황들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 이제는 다시 와인을 즐겨도 될 듯해 보인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사유의 서재>에서 하는 와인 클래쓰를 들으며 다양한 와인과 음식들을 접해보고 있다. 그리고 한 테이블에 앉게 된 사람들과 두세 시간씩 담소를 나누며 가벼운 관계도 즐기고 있다.
급하게 잡힌 집안 행사로 토요수업을 일요일로 바꾸게 되어 지난 번 멤버들을 보기 어렵겠구나 하면서 어제 수업에 갔었는데,
지난번 토요 멤버들이 한분 빼고 오늘 다시 한 테이블에 우연히 모이게 되었다. 서로 연락처도 모르고, 와인과 음식을 나눠먹는 느슨한 관계인데, 반가웠고 편하고 좋았다.
내 나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가 한 번은 정리된다고 하던데.. 하여, 모든 관계가 타이트하고 끈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엔 서로 피곤해지고 남의 바운더리 침범하고 그런 경우가 많아지니까.
가볍게 만날 수 있는 느슨한 관계망을 많이 만들어놔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와인과 함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관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