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서 머리를 감고 맨 얼굴에 립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적포도빛 크림 블러셔를 손가락으로 밀어 묻혀 광대 주변에 원을 그리면서 부드럽게 토닥여 펴 발랐다.
책 좀 읽을까 하고 나왔는데 쌀쌀한 공기에 어느새 삭아버린 나뭇잎들을 보면서, 갑자기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어졌다.
고속도로를 타러 가는 도로에 가로수에서 떨어진 갈색 큰 잎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흩어진다. 낙엽 소용돌이를 뚫고 지나가면서 나도 한 템포 느린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브루노 마스 음악을 틀어 놓고 신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분당 <나무사이로>.
정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자리를 잡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부여잡으며 셀카를 몇 장 찍었다. 맨얼굴임을 나 자신에게 강조하면서,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혼자 만족한다.
갑자기 차가운 강풍이 불면서 얇은 나뭇가지들이 휘어지고, 내 머리는 산발이 되었다. 춥다. 실내로 얼른 가방을 들고 들어갔다.
내가 주문한 에티오피아 커피가 나왔다. 한 모금 삼키고 나서 컵노트를 보니, 라임, 살구, 천도복숭아, 진한 과실과 라벤더의 복합적인 향기, 스카치캔디, 정향.
다행히 서너 가지는 어렴풋이 느껴진다. 센서리 교육에 돈 쓴 보람이 있네. 하며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입가에 지어본다.
며칠 전 잠 못 이루는 밤에 앞으로 커피는 철저히 즐기는 대상이 될 것이고, 카페 사장 아니면 최저 시급 받으며 알바 노릇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세웠다.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커피의 씁쓸한 맛은 정향 때문일 거야..
창가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잠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