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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un 02. 2023

<메리골드 꽃차>


여느 날과 다름없는 어스름한 새벽녘에 나는 식탁을 치우고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말라비틀어진 꽃차'가 식탁 한 구석에서 눈에 띄었다. 앞면을 돌려보니 '메리골드 꽃차'라고 쓰여 있었다.

매년 가는 커피 박람회에서 샀는지 강릉 커피축제에서 샀는지 잠시 헷갈려하면서, 어쨌거나 꽤 비씨게 주고 산 차였다는 게 떠올랐다. 동시에 황금빛 노랑, 주황의 꽃차를 처음 우렸을 때의 그 노오란 차 색깔과 그에 걸맞은 향이 기억을 비집고 나왔다. 풍부한 맛과 향을 음미하며 뿌듯해하는 내 모습도 기억 창고에서 떠올랐다.

근데 왜 두세 번 밖에 마시지 않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버려두었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뭐 모든 일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그렇게 되었나 보다 해야지. 하다가 혹시 내 감정이 메말라 버리면서 꽃잎에 수분이 1프로도 남지 않을 정도로 쥐어짜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책망이 느껴진다.


전혀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이런 거..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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