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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Nov 25. 2023

<별이의 아침 메뉴>


나의 기상 시간은 새벽 네시 반. 남편이 아침밥을 다섯 시에 먹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먼저 에스프레쏘 머신을 켠다.


사과나 배 또는 요즘 철인 단감을 서너 조각 잘라 작은 접시에 담아 내 방 사이드 테이블 위에 갖다 놓는다.


머신의 온도가 92도가 되면 오늘의 원두를 골라 그라인더에 갈고, 포터필터에 담긴 원두 가루를 레벨링 툴로 고르게 편 후 탬퍼로 살짝 눌러준다. 에스프레쏘를 내려 먼저 남편의 아이스 카페라떼를 만들어 텀블러에 넣어 둔다.


다시 에스프레쏘 투샷을 내려 주둥이가 넓은 커피 잔에 부어 놓는다. 차가운 우유를 스팀 피쳐에 반 정도 부은 후 스팀봉을 우유에 담가 스팀을 쳐서 스팀 밀크를 만들고, 커피잔의 에스프레쏘에 균질하게 부으면서 나를 위한 하트를 만들고 흡족해한다.


잔을 들고 내 방 소파에 앉아 가사 없는 연주곡을 골라 스피커에 연결하고, 따뜻한 라떼를 반 정도 마신 후 시원하고 달콤한 과일을 먹는다.


커피 냄새를 맡고 별이가 내 방으로 들어온다. 봐달란 듯이 내 앞에서 우쭈쭈 네 다리로 기지개를 켜고 나서, 과일 접시 근처에 와서 코를 킁킁거리면서 안절부절못한다.  과일을 조금 베어 내 손바닥에 두면 허겁지겁 삼켜 버린다.


이때쯤이면 남편이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너무 듣기 싫은 그 “밥 줘” 소리가 들리기 전에 잰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해 전날 끓여놓은 국을 데피고, 간단한? 아침밥상을 차린다.


새벽 미션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면 포크는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입에 과일 한 조각을 문 별이가 나와 눈이 딱 마주친다. 후다닥 소리와 함께 별이가 침대 밑으로 줄행랑을 친다. 남은 카페 라떼를 마시려고 잔을 들여다보니, 어찌나 싹싹 핥아먹었는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잔 바닥이 윤이 난다.


조상이 프랑스에서 온 비숑 프리제라서 그런가. 아메리카노는 냄새 맡는 것도 싫어하는데, 유독 카페 라떼를 환장하며 좋아한다. 그리고 달콤한 과일도 좋아한다.

시간 순서상 카페 라떼를 홀짝홀짝 마시고 나서 과일을 후식으로 먹는 것 같다.

먹을 거에 대한 눈빛과 집중도를 보면 ‘서울대 의대’ 감이다.


“이노무 쉐끼! 내 커피 또 훔쳐 먹었냐?”


새벽마다 숨바꼭질 하는 별이에게 매일 읊조리는 나의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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