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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경 Nov 04. 2017

관계에서의 최대의 적. 어장관리.

너는 얼마나 잘났고 고귀하기에 다른 이의 마음을 가지고 노느냐.

한 남자가 있다. 지고지순하면서도 친구들 사이에선 옳은 말도 할 줄 알지만 살짝 소심한 구석이 있는 사람 좋은 녀석. 그런 그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여자는 적극적이고 사근사근하면서 적당한 애교와 웃음을 띄며 남자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그 남자로 하여금 세상에 이런 천사가 어딨나 싶을 정도로 매력을 뽐내며 남자의 마음을 훔친다. 하지만 그런 천사 같은 그녀도 조금 이상한 게 가끔씩 연락 두절이 된다. 하루 정도 시간이 지나더니 이틀, 삼일, 일주일, 심지어 열흘. 남자는 그녀가 점점 이해 안 되고 처음엔 사랑스럽던 그녀가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바뀌면서 싸우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 결국, 아픈 마음 붙잡고 눈물을 뿌리며 절교를 선언하고서 얼마 뒤, 친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듣는다. "너 인마, 어장관리당한 거였어. 그 계집애로부터."


한 여자가 있다. 학창 시절에 공부만 해왔을 것 같은 평범하고 조금 순진한 그녀. 숫기도 없고 조용한 그녀에게 어느 날 같은 동기 중 인기도 좀 있고 성격 좋은 녀석이 말을 걸어온다. 집도 같은 방향이니 차로 데려다준다고 하고 말이다. 며칠을 그렇게 같이 다녔더니 성격도 남자답고 농담도 잘 건네고 친절한 그가 점점 내 마음에 들어온다. 그가 좋아지기 시작한 그녀. 고민 끝에 마음을 어렵게 먹고 오늘은 그에게 내 마음을 보여줘야지 하고 안 하던 꽃단장까지 하고 나갔건만 친구로부터 온 카톡 사진을 보고 멘붕에 이른다. 대형 쇼핑몰에 퀸카 같은 여자와 웃으며 다정하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포착한 이른바 파파라치 사진이었다. 하필 같이 있는 여자가 나랑도 친한 과후배. 그녀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건 불과 5분도 채 안 지났다.


위의 이야기는 과장이 다소 첨가되었고 필자가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예시로 설정한 가상의 이야기다. 필경 지나친 과장이라며 반박하시는 분들에게  오해 마시라는 당부 먼저 드린다. 그렇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어장관리다. 사람 사이에서 참 맞이하기 싫은 불청객인 어장관리. 그 불편한 진실 같은 주제를 놓고 오늘은 사뭇 진지하게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다만 주제가 주제인만큼, 다소 격앙되거나 거친 표현에 거부감이 들 수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다.


20~30대 청년들이 상당히 많은 대학교 혹은 교회, 아니면 동호회 등등 이러한 공동체성 특징을 띄는 단체들은 여럿이서 한 주제나 공통문보를 놓고 모이기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 와중에 엠티든 수련회든 배낭여행이든 스터디든 하면서 눈도 맞게 되고, 또 자기들끼리 비밀연애를 하면서 돈독해지거나 한다. 그리고 그런 무리 중에서 한 명씩은 빛나는 존재가 꼭 있다. 비범한 아우라를 뿜어내면서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존재감 저는 그 사람은 무리 중에서도 인기가 좋고 환영을 꽤 많이 받으며 어딜 가도 대접(?) 받는 존재감을 보여주신다. 마치 그들 사이에선 연예인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같이 존재감 없고 소심하고 약간은 순진해 보이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뭔가 둘만의 비밀이 형성되는 만남을 갖고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면? 뭐 그 자체로 보면 상당히 심봤다며 이런 천금 같은 기회가 어딨겠냐마는, 그 사람의 행동에 뭔가 진심이 안 느껴지고 만날수록 마음이 허하다거나, 왠지 이건 나 혼자만 마음을 주는 것 같고 나는 어떤 위로조차 받지 못하는 관계 같다는 생각이 짙게 든다면 그건 어장관리가 아닐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봄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어장관리는 애초에 똑똑해 보이거나 눈치 빠른 사람보단 약간 어수룩하고 눈치가 좀 둔하고 대하기 편한 상대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쉬운 상대일수록 편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눈치 못 채고 자신의 어장에서 활발하게 헤엄쳐 다닐 테니 말이다(응?).


그런 어장을 만들고서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옆자리를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채워나가려고 한다. 비상하게 머리를 굴리면서 동선을 짜고 시간을 설정해서, 절대 이 사람과 저 사람이 겹치거나 알지 못하도록. 자신을 철저히 감추면서 가면을  쓴 채 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절대 본인의 진심은 안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저 가면이 두껍기에 속을 알 수도 없다. 표현을 안 하는 건지 아님 못하는 건지 그저 알 수 없는 사람이란 것뿐. 한마디로 다른 사람 기만 빨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안타까운 건 연애건 관계건 진심을 통해야 이뤄지고 연결되는 것인데 그런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계, 그중에서 꽃이라 하는 연애라 함은 남녀가 사랑이라는 단어 아래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맞춰줄 수 있음을 약속하고 출발을 한 경우다. 한데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놓고서 자신은 발을 쏙 빼는 행위는 연애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그저 다른 이의 마음을 함부로 갖고 논 '비겁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는 희생할 생각도 없고 그저 내 빈자리만을 채우고자 하는 더러운 욕심이기도 하고 말이다. 사실 이걸 알고 하면 천하의 몹쓸 인간이지만, 어장관리는 생각지도 못한, 본인도 모른 채 어쩌다가 그런 상황으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본인이 상대에게 확실하게 표현하거나 의사를 전달하지 않은 채, 그냥 만나는 것에만 집중하거나, 호감의 표시는 어슴푸레 뿌려놓고선 확실한 표현은 안 하는 썸 상태로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 또한 어장관리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사람의 마음은 소중하다. 자신도 마음이 다치면 그 상처에 분노하거나 아파하거나 울면서 괴로울 텐데, 하물며 그 기분을 잘 알 것 같은 사람이 다른 이의 마음을 그렇게 함부로 갖고 놀아서야 되겠는가. 얼마나 잘났고 고귀하기에 또 무슨 권한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그따위로 난도질을 하고서 고개를 들고 다니냐는 것이다. 본인 얼굴에 침 뱉기 싫고 똥칠하기 싫다면 지금이라도 어장관리는 당장 그만두고 내가 상처 준 이들에게 일일이 만나서 사과하고 다녀라. 그만큼 어장관리는 중죄 중에서도 괘씸죄다. 다른 이의 마음에 함부로 대한 것만큼 인간의 중죄는 없다.


만약 내가 성향이 외로움을 못 견디거나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 한둘만 있어도 충분하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당신을 믿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들과 진지하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고민하고 그렇게 위로해주면서 가는 게 좋지, 단지 내 외로움을 그때마다 해결하기 위해 생각 없이 막사는 인간처럼 어장관리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쓰레기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걸어주기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성 간에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라면 어느 정도의 적당한 선이 보일 것이다. 그 선을 최대한 넘지 않아야 한다.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하면서 진심은 안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를 정리해봄을 권유하는 바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정말로 고결하고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것이다(못된 마음을 제외하고). 당신의 마음 또한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어장관리하는 이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거부감으로 뭐야 이건 하겠다만, 그전에 본인이 관리당하는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아마 느낌이 올 것이다. 얼마나 열 받고 화나고 기분 더러울지.



생각해보니까 진짜 뭣 같지? 이제 알면 다신 하지 마. 그런 거 했다가 뒤통수 세게 맞으면 더 정신 못 차린다.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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