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함은 버리고 투명하게 다가가라.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부득이하게 끊게 된다. 그런 와중에 관계를 한동안 유지하면서 지낼 때, 나와 깊은 친분이 있는 죽마고우부터 직장동료나 혹은 소셜미디어에서 알게 된 일명"페친(페북 친구)"같은 관계들이 있을 것이다. 그 깊이가 어떻든 간에, 우리는 많은 관계 가운데서 상대를 대할 때 간혹 진중하게 대해야 할 산(문제)을 만날 때가 있다. 관계의 깊이가 깊은 친구나 가족 같은 사이라면 서로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나누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그 관계마저 깨질 수가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일쑤다.
물론 이런 경우엔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면 참 난감하기 그지없고 고민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갖게 된 그 고민 때문에 상대가 불편할까 봐 애써 감추고 아닌 척을 할 수 있을까? 상대는 명확한 답변을 요구하는데 그저 웃기만 하면서 답을 이야기 안 하는 게 과연 현명한 대처일까? 그때의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무난하게 잘 풀렸다. 정중하지만 명확하게 이야기함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명을 돕기 위해서 좀 극단적이지만 이런 경우가 적잖게 있기에 예시로 들었다.
상황이 불편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좀 피하고 싶어 지는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나.. 관계가 과연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걸까를 생각해보자. 관계는 최소 둘 이상이어야만 이뤄지는 연결고리다. 그러니까 최소 단위가 두 명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드시고서 그 인간과 관계를 맺었고 또 남자에 이어 여자까지 만드시고 그 둘의 관계를 이어준 것처럼, 우리의 관계는 절대 혼자만이 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만큼 상대 때문에 내가 정말 불편하더라도 그 상대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정말 막장 진상 혹은 천하의 못된 인간이 아니라면 말이다.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면서 조용하지만 약간은 힘 있는 말투로 내 생각을 바르고 명확하게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나도 덜 피곤하고 상대도 요구했던 답변을 듣게 되고 말이다. 물론 공방전이 오가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져서 논쟁이 길어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런 경우엔 본인의 실수가 있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는 게 맞다. 대신 지나가는 형식적 사과가 아닌 진심을 담아서 말이다. 그래야 상대도 그 사과에 마음이 누그러져 본인도 지나치게 화낸걸 되려 사과한다거나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서 진심이 오가는 결과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말 안 통하는 꽉 막힌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답답한 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배웠고 또 예의를 알고 진심을 알게 된다면 상대의 성품에 오히려 감복해서 더 좋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앞의 상황과 비슷한 경우에 몇몇 다른 이들은 상대를 가식적으로 대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속에 없는 말이나 아님 애매모호한 핑계를 대면서 무마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그 자리를 벗어나게 할 순 있어도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라 되려 본인을 찌르는 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가식은 나란 사람에 대해서 진심이 없고 그저 비추는 그 표정조차도 필요 없는 껍질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참으로 위험한 함정인 것이다.
가면은 가면일 뿐이다. 그 안에는 텅 비어있듯이 아무리 겉모습이 보기 좋아도 속 빈 강정처럼 그 사람을 낮춰버리는 것이 가식이란 놈이다. 조금은 불편한 상황이 오더라도 진심으로 대하자. 애매모호한 말로 아니면 아닌 척 애쓰면서 나 자신을 굳이 깎을 필요까지 있을까? 후폭풍이라는 괜한 수고만 떠안을 뿐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그 입장이란 걸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가식은 그만 떨고 진심의 표정으로 투명하게 다가가라. 그것이 너와 나의 관계를 굳게 이어주는 끈으로 거듭날 테니까.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