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학습의 초심자는 '겉모습'에 집중한다.
그래서 내 외모가 어떠한지, 내 목소리는 어떠한지, 나는 무슨 옷을 입었고,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나는 어디 출신에 박사학위가 있고 등등
겉모습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무척 떨어지는 것 같다. 그걸 지키기 위해 자기애와 합리화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상대의 진심을 자존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은 듯 하다.
책을 쓰면 다 강사나 강의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듯 싶다. 그러나 진짜 책은 그 글을 쓴 사람이 죽은 후에도 읽혀지거나 연구되어 개발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학습의 초심자의 단계가 지나면 그 다음으로는 '생각'에 집중한다. 지식과 정보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빠지게 된다.
자주 빠지는 특성이 "나 저거 아는건데" "너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보자"라는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해의 척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이해 수준에 상대를 평가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이 시기들이 잘 보내고 나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스스로에 의해 전부 무너지기 시작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 지식, 정보, 가치 등이 모두 무의미함을 느끼게 되면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겉모습' '생각'의 깊은 집중이 지나면 '마음'을 들여다 보는 단계에 들어서는데 매순간 어려움이다. 이 단계를 지난 분들의 모습은 뭔가 느낌 자체가 다르다.
가끔 '마음'이라는 것을 강의소재로 들고 나오는 분들을 접하게 되는데, 조금 들여다 보면 첫 학습 단계인 '겉모습'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라도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다.
학습의 단계로써의 '마음'은 자연과 그에 적응하며 사는 유기체들의 관계와 닮아 있는 것 같다.
해, 달, 바람, 비, 흙이 변화하는 모습, 이에 순응하며 사는 유기체와 순응하지 않고 사는 유기체들. 결과적으로 생기는 다양한 조건들이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 학습을 하다보니 '믿음'의 영역을 보게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은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겉모습'이나 '생각'에 집중하는게 대부분인 것 같다.
이 '믿음'이라는 부분은 종교적인 부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집중해 온 단계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것? 어떠한 경우라도 전해지는 진심?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인 것은 확실하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밖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 단계는 아닐까 생각한다.
학습을 하면서 이 '믿음'에 집중하다 보면, 지금까지 집중해왔던 '마음' '생각' '겉모습'이 그저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이분법적으로 나뉜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는 기분이며, 모든 학문이 하나라고 느껴지게 되는 학습 단계인 것 같다.
이제 12년 정도 사람의 '안에서 밖으로 새어나가는 곳' 중 하나인 '목소리'를 공부하면서 느끼게 된 부분이다. 앞으로 10년의 학습 후에는 또 어떤 것을 느끼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