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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날개달기 Feb 15. 2023

번호표 전쟁

대기고객 땡기기

(너 그 고객 끝나고 금고로 와.)



(네.)



메신저 창에 대답도 하기 전에 하대리는 금고로 들어갔다. 대체 또 왜 부르는 걸까.



- 야, 너 지금 장난하니? 왜 안 땡겨?



- 저 아침에 전표 싸고 있었어요.



- 누가 너 전표 싸는 거 몰라? 밀리면 일단 땡기고 전표는 이따가 해야지. 전표는 마감하고 보내는 거잖아.



- 근데 미루면 자꾸 잊어버려서요.



- 안 잊어버리게 적어 놓고 번호부터 땡겨. 너 때문에 밀리니까 다른 팀에서까지 땡겨주잖아.



- 네.. 흑..



아침부터 하대리는 화가 단단히 났다.



자기 일은 미뤄놓고 번호표 땡기고 있는데 신입은 전날 전표 싼답시고 1시간 동안 고객을 받지도 않는다.



참다 참다 터졌다.



(하대리, 애 좀 그만 갈궈라. 왜 또 금고로 불렀어?)



(쟤가 안 땡기니까 차장님까지 번호 땡겨주셨잖아요. 몇번이나 말했었는데 또 저러네요.)



(쟤 일하는 성격이 저런 거야. 1년간 말해도 안 바뀌는데, 스트레스받지 말어. 내가 밀릴 때 땡길게.)



- 52번 고객님, 8번 창구로 와 주세요. 52번 고객님 안 계신가요? 53번 고객님? 네, 이쪽으로 오세요.



- 아니, 2번 창구 직원은 일 안 해요? 손님도 없는데 50분 기다렸어요.



- 많이 기다리셨죠.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업무로 오셨을까요?



(거 봐요, 차장님. 고객도 불만이고.)



(알았어. 이따 이계장한테 가서 좀 달래줘. 아직도 울고 있나 본데.)



- 박 차장님, 고객님 끝나시면 잠시만요.



- 네, 팀장님!



이계장은 금고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 뭐야, 이계장 또 울고 있던데. 하대리한테 내가 말을 좀 할까?



- 팀장님, 하대리가 세 보이긴 해도 착해요. 걔도 이계장이 하도 번호표 안 땡기니까 참다가 얘기한 걸 거예요.



- 그렇다고 애를 자꾸 울리면 어떡하냐. 이계장도 고집이 세.



- 그러게요. 생각의 차이예요. 고객이 기다리면 애가 닳는데, 이계장은 기다리는 게 그 사람들 몫이라고 생각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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