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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날개달기 Apr 13. 2023

퇴직직원

소싯적에 은행원이었다고 말한다면.

- 차장님은 퇴사하고 이 은행 거래 할 거예요?



- 아우, 절대 안 하지. 무슨 말씀이세요.



- 진짜 저도 절대절대 우리 은행은 쳐다도 안 볼 거예요.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돼요. 저런 사람들.



- 우리 지점장님 마음이 좋아서 그래. 거절을 못 하시는 거지. 퇴직한 직원이라고 오면 다 받아주시네. 휴.



- 아니 퇴직하고 창피하게 왜 후배들한테 영업하러 오냐고요. 뻔히 은행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면서.



- 아니까 오지. 은행원이 아는 게 그거뿐이라.



아침부터 퇴직한 지점장이 와서 자기네 법무사 사무장한테 일 시켜 달라며 한참 동안 영업을 하다가 갔다.



그렇잖아도 일거리가 별로 없는데 매일 문턱 닳게 인사 오는 사무장들한테 경쟁자가 는 셈이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홉 개입니다.



- 네. 여기 사인이요.



박 차장이 카드 배달을 받고서, 배달원에게 사인한 태블릿을 돌려준다.



- 저도요, 은행원이었어요.



- 네? 잘 못 들었어요.



- 저도 은행원이었다고요. 왜 옛날에 상고 출신들이 은행 다닐 때요. 저도 은행 35년 다니고 퇴직했어요. 이렇게 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들 보면 그때 생각 많이 나요.



- 아, 그러셨어요? 그때 정말 좋으셨나 보네요.



- 네. 창구에 앉아서 일할 때가 정말 좋았어요.



- 네..



하루하루 업무도 지겹고 민원인도 지겨운 박 차장은 공감 없이 대답만 건넨다.



(차장님, 오늘 은행원 했던 사람들 오늘 왜 이렇게 많이 와요?)



(푸핫. 그러네요. 근데 은행원이었던 게 자랑스러운 사람들도 있나 봐.)



(헐.)



(그러니 찾아와서 영업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얘기하고 그런 거 아닐까.)



메신저로 이야기하다 말고, 하대리가 박 차장을 쳐다본다.



- 차장님도 저랑 같은 생각이시죠?



끄덕인다.



- 자본주의의 끝은 은행이지. 그거 싫잖어. 부끄럽다아.



- 제 말이 그 말. 은행원인 것도 싫고, 은행원이었다고 말하는 건.. 아우.



절레절레.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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