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을 듣고 이해했습니다.
- 왜 이렇게 쓸 게 많아요?
- 이 펀드는 고위험 상품이다 보니 더 설명드릴 게 많네요. 고객님.
고위험 투자자들은 ‘설명을 듣고 이해함’을 적다가 질려 버린다.
- 예금도 이 폰으로 했고 대출도 이 폰으로 받았는데 갚을 땐 왜 지점에 와야 해요?
- 담보로 잡은 예금이기 때문에 해지할 땐 반드시 담보해지 먼저 해야 되거든요.
예금해지와 동시에 대출 상환이 되도록 전산개발이 빨리 됐으면 좋겠다.
- 대출설명서가 아니라 아주 백과사전이네요. 이걸 다 읽어보라고요?
- 안내해 드렸지만, 나중에 설명 못 들었다는 민원이 접수될 때가 많거든요. 저희도 참 어려워요.
왜 이렇게 ‘서명’하고 ‘동의’하고 ‘이해’했다는 절차가 많이 필요할까?
이 모든 것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금융소비자를 괴롭히고 있다.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을 꼭 해야만 해요? 높으신 은행원 차장님은 알지 몰라도, 이렇게 긴긴 카톡 읽고 저 같은 사람이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겠어요?
- 퇴직연금 계좌 갖고 계셔서, 투자할 상품을 정하는 안내를 받으신 거예요.
- 그래서요? 난 이미 정기예금으로 하고 있는데, 어쩌란 거예요.
- 상품이 없어지거나 상품 지정을 안 하셨을 경우에 대비해서 미리 옵션을 정해두는 거예요. 그걸 모바일뱅킹으로 하실 수 있게 카톡으로 안내가 갔고요. 오셨으니까 창구에서 처리해 드릴게요.
- 허, 참나. 그럼 지금까지 운영이 안 됐다는 겁니까?
- 아니요. 안 된 건 아니에요. 나중에 혹시 모를 상황 때문에 그냥 현금성자산으로 방치되지 않게 미리 손을 써놓는 거예요.
- 지금까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네. 대체 은행은 믿을 수가 없어. 지금껏 운영이 어떻게 됐는지 줘봐요. 난 뭘 동의한 적도 없는데.
정부, 금감원, 금융위 등에서 느닷없이 하달받은 업무를 기한까지 다 해내야 하는 대다수의 은행원들은 이런 ‘동의’ 작업에 익숙하다.
고객을 어르고 달래기도, 때로는 협박도 하면서 하라는 ‘동의’를 받는다.
은행원 말만 믿고 술술 서명 사인하는 고객들이든, 약관 한 자 한 자 따져가며 사인하는 고객들이든, 모두 이것은 나를 포함한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 차장님, 00 카드사에서는 연회비 2만 원인 신용카드를 15만 원 포인트를 받고 만들 수 있대요. 같이 해요.
- 아 거기도? 00 카드도 10만 원 캐시백 줬었잖아.
- 맞아요. 요즘 신용카드 엄청 푸나 봐요. 아, 그래서 이렇게 회생신청하는 사람이 많은가.
몇 번의 지루한 동의 서명만 마치면 신용카드가 뚝딱.
신용카드는 빚이다. 그냥 빚. 카드빚.
금융소비자는 보호받고 있을까.
진정한 보호는 동의 서명이 아닌 기초적인 금융교육인데 그 필요성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 제가 말씀드린 것 중에 혹시 이해 안 되는 내용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그래서 어디다가 사인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