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과 공평함
너무 진지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었지만, 탈락하고서 이 정도로 아무렇지 않을 줄은 몰랐다.
호기롭게 학술연수를 지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류 합격이 된 뒤, 면접을 보러 오랜만에 본사 건물을 방문했다.
십 년 만에 보는 동기도 있었고, 처음 면접장에 와 보신다는 부지점장님도 계셨고, 젊은 대리나 과장들도 보였다.
면접은 입사 이후 처음이었기에 떨리는 가슴 부여잡고 좀 과한가 싶더라도 청심원까지 사 마셨다.
물론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본부에서 오랫동안 고생한 직원들이 선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했던 직원과 싱글로 휴직 없이 일했던 직원 둘 중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면, 내가 면접관이어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공정’이다.
‘공평’을 기대했던 직원들이 최종선발인원 발표 이후 블라인드에 엄청난 불만 글들을 올렸다.
누구는 두 번의 기회를 줬다느니,
특정 부서 출신이면 무조건 뽑았다느니,
본부에서 잠시 영업점 나온 직원들 빼고는 진짜 영업점 출신 선발자는 없다느니.
물론 다 사실이다.
탈락자 중 한 명인 나는 ‘공정’ 한 결과를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 차장님, 00이 됐더라고요? 아니, 그런 인간을 왜 시켜주는 거예요? 진짜 어이없어요.
- 네 번째 도전 이랬어. 그리고 00 부서에서 고생하고, 뭐 될 만하니까 뽑혔겠지.
- 어후. 차장님은 화도 안 나요? 맨날 일하는 척 혼자 다하고 밑에 직원들 괴롭히고 술 먹으면 개 되는 그런 인간을 왜 뽑냐고요. 00 부장이랑 친하다더니. 어후. 은행 썩었어요.
조직에서는 이너서클에 들어가야 원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게 ‘공정’한 시스템의 기본이다.
이너서클은 카르텔 형성이 필수이고, 가장 무난한 시작은 ‘동문회’이다.
선배님, 후배님들이 잡아주고 끌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야 자연스럽게 공정한 시스템에 스며들 수 있다.
이미 조직의 일원이면서 공정한 시스템을 공평하지 않다면서 비난하는 것은 과연 옳은 비판인가?
- 차대리님, 나 위로해주려고 해주는 말인 거 다 안다. 고마워. 내년에 또 한 번 해보지 뭐.
그리고 동문회는 안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