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화분에 액비 주는 시간

인생의 새로고침

by 코끼리 날개달기

생생히 살아있는 꽃봉오리들이 피어날 때, 나도 그들 곁에 오롯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필리핀에서는 강렬한 햇살 덕분에 1년 내내 예쁜 꽃을 볼 수 있다. 옛날 우리 엄마가 내 나이쯤이었을까. 화초 키우는 엄마가 참 부지런해 보이기도, 참 다정해 보이기도 했다. 이제 엄마 나이가 된 내가 꽃화분을 키운다. 예쁜 꽃을 보기 위해 정성으로 액체 비료를 만들어 화분들에게 나눠준다.


- 엄마도 외로웠나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그 관계에서 생각지 못하게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물론 나의 진심이 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주 가끔, 그런 진심을 의심받기도 하니까. 나는 착한 척하거나 누구에게 흠 잡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배려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런 진실을 호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진심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고 비난의 손가락질을 들이댔다.


나는 혼자서 그녀의 감춰졌던 추한 민낯을 마주하고 있었다.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진심이란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나는 적어도 그렇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헛수고인 일들이 있다.


더 이상 누구도 만나고 싶지가 않다. 내 마음의 모든 것을 소진해버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한없이 외로워질 때가 있다.




태풍이 온 것도 아니고, 벼락을 맞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베란다의 예쁜 꽃들이 시들고 축 쳐져 있다.


- 내 욕심이 과했나.


꽃을 더 많이 피우라고 너무 많은 액비를 주면 오히려 꽃들은 한꺼번에 시들어 버리고 만다. 어제까지만 해도 예쁘고 싱싱했던 꽃들이 마르고 늙어버렸다.

이제 보여줄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물이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 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수를 하게 된다. 물을 줄 때도 마음을 줄 때도 그들을 아끼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꽃에게 말을 걸 때마다 빨간 장미는 아름다움으로, 하얀 장미는 포근함으로 향기를 전해 온다. 은은하게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다. 나도 아주 느슨하게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외롭다 못해 슬픈 이야기들도 묵묵히 들어주는 그 모습이 참 어른스럽다. 잘 키운 꽃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다. 이것은 명제다.

하지만 예고 없이 다가오는 외로움은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찬바람처럼 그렇게 가슴 한편을 서늘하게 만든다.


꽃들은 그런 찬바람에 그저 가녀린 몸을 맡기더라.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나 또한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이렇게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