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애착기

팬데믹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

by 코끼리 날개달기

결혼한 지 10년도 더 지났으니, 이제 와서 남편과 친해져 보려 한 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렇다고 아줌마들의 흔한 푸념처럼 '그때 첫사랑이랑 헤어지는 게 아니었어.' 하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되짚어 봤다. 과연 결혼식이라는 출발선을 넘고서 우리 둘만을 위한 시간은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그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출근 준비를 했고, 그는 나와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다. 서로 얼굴 볼 시간이 없었다. 같이 살지만 같이 사는 게 아니었다.


신혼 때는 집안일, 육아, 승진, 시가의 집안 대소사 등등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셀 수도 없이 많은 말다툼을 했다. 당시에는 내가 싸움에 능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게 너무 벅차다고, 당신이 내 편이 되어달라고 애원하는 게 전부였다.


-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 어떡하라고.

- 내 탓하지 마.


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와 차가운 눈빛이었다.

이럴 때 쓰는 말은 '절망적'이다.




이런 남편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면 희망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른들이 자주 쓰는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는 말, 순 거짓말이다. 아직 긴 인생 다 안 살아봐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변한다. 어떤 사람이 변했다.



우리는 서로가 뭐라고 대꾸할지 안다고 생각해서 언젠가부터 싸울만한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좋은 이야기만 하고 웃긴 이야기만 하면서 서로 조심했다. 그게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싸울 힘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싸워봤기 때문에, 다 부질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마닐라로 이사를 오고서 예상치 못한 팬데믹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기간 동안, 신혼 때 싸웠던 것을 복기하기라도 하는 마냥 온몸의 정력을 쏟아가며 몇 번이나 크게 싸웠다. 주재원들 다닥다닥 모여 사는 데서 그렇게 크게 싸우는 거 쉽지 않은 용기인데, 우리 둘 다 앞뒤 안 따지는 건 유일하게 닮은 성격이다.

세월이 흘러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 나는 누가 봐도 싸움에 능한 사람이란 것이다. 나의 노화와 노여움은 싸움의 원동력이 되고, 아들들 키운 경험이 싸움의 기술을 다져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아진 남편에게는 빈틈이 생겼다. 나는 신이 나서 그 틈을 비집고, 그동안 쌓인 내 감정을 쏟아부었다.

굳건해 보였던 마음의 벽 사이로 대화가 오갔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진실한 마음을 읽었다.




- 내가 미친놈이었어.

- 제발 잊어줘.

- 도대체 그거 누구야. 완전 쓰레기네.


남편에게 예전에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내면, 이제는 마치 남의 말하는 마냥, 시키지도 않은 자신의 험담을 줄줄이 터뜨린다. 나 통쾌하라고 일부러 하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싫지만은 않다. 그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애착기를 보냈다.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를 열 번 정독하게 한 그 남편은 이제 그냥 '과거의 남편'일뿐이다. 남편은 부단한 노력을 해 왔고 나는 그것을 이제야 알아봐 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남편이 주재원이 되고 외국 살이 처음이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마닐라에 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마닐라인지 서울인지 모를 아파트에 갇혀 살고 있다.


주재원 기간 대부분이 이런 팬데믹이었지만, 그래도 마닐라에서 얻고 가는 것이 있으면 하나만 골라 보라고 물었다. 남편은 주저 없이 말했다.


- 골프밖에 없지, 골프. 그래도 내가 진짜 실력이 많이 늘었잖아, 그렇지? 우리 마누라도 마닐라 와서 골프도 시작하고, 그러니까...(중략)



나도 남편이 만약 여기 와서 얻고 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 난 당신인데. 남편.


남편이 이 대답을 들으면 얼굴 시퍼레질까 봐 차마 말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