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의 재발견
내가 왜 하필 제삿날 갔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자 친구의 신분으로 예비 시가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층층시하에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한시도 앞치마를 뺄 틈이 없었다.
나보다 십 킬로그램은 덜 나가 보이는 마른 체구를 가지시고도, 10인분의 탕국을 끓인 냄비를 번쩍번쩍 들어 옮기셨다.
남자 친구의 여동생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 제사하는 거 보니까 어때요?
- 뭐 그냥, 재밌어요.
- 와, 엄마. 제사가 재밌대!
정말 놀랍다는 그 표정,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어머니가 평생 그렇게 싫어하던 제사를 내가 재밌다고 해서 그랬나 보다.
실은 그 대화의 타이밍이 잘못됐었다.
남자 친구가 분명히 누구의 제사인 줄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그런 그가 제사상 앞에서 버젓이 양복을 빼입고 절을 하면서 나에게 윙크를 날린 순간이었다.
장난스러운 그에게 제사나 종손은 너무 안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러니 착각을 했었던 거다.
그와 결혼하면 내가 며느리 역할을 하든 안 하든 선택사항일 줄 알았다.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이지만 인생에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어딨으랴.
공부한 만큼 성취가 있었고, 노력한 만큼 가질 수 있었는데 결혼이라고 못 해낼까.
내가 결혼을 너무 얕잡아 봤다고 느낀 건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였다.
결혼 준비의 가장 어려운 점은 속수무책인 사면초가의 상황에 온몸이 포박된 듯 무기력함과 동시에 제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는 점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
결혼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결혼 전에 예비 시가 행사에 초대받는다면 명심해야 한다.
거기서는 남자 친구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를 봐야 한다.
그녀의 모습이 결혼 후 내 미래의 모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