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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은 바람이 장만해 준 곳에서만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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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바람이 주름의 집을 짓고
거기에 아픔을 저장해 두네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이성부 <봄> 중에서




바람이 뺨을 세게 치고 간다


세월도 함께 대차게 지나간다


내 편인듯 다가와서는 냉정하게 등을 보이고 간다


정면을 볼 때에는 모두 흥정에 이긴 듯했으나 전패


진 게 이긴 거라 위무하지만 처절한 상처만 남는다


아픔의 흔적은 주름을 만들어 그 사이에 들어앉고


다시 손짓한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계속 걸어가라고


행진곡이 경쾌하다


이것은 걸음이 아닌 시선을 위한 부추김이다


눈물을 훔치고 흐릿해진 보폭을 고쳐 나아간다


어차피 내가 걸어가지만 바람도 눈물도 한몫한다


아니다 전부일 경우가 태반이어서 마음이 섧다


우리는 두번은 다시 살지 못할 시간을 살아낸다


그립다 하면서 외면하고 마는 냉정을 배워버렸다


바람은 모진 스승이다


속내를 들어내지 않고 말없이 다그치는 엄한 선생


머리칼이 헝클어진 후에야 조금은 알아차린 그 뜻


언제 다가올지 모를 바람을 나도 모르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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