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83호
꽃바구니
나 희 덕
자, 받으세요, 꽃바구니를.
이월의 프리지아와 삼월의 수선화와 사월의 라일락과
오월의 장미와 유월의 백합과 칠월의 칼라와 팔월의 해바라기가
한 오아시스에 모여 있는 꽃바구니를.
이 꽃들의 화음을.
너무도 작은 오아시스에
너무도 많은 꽃들이 허리를 꽂은
한 바구니의 신음을.
대지를 잃어버린 꽃들은 이제 같은 시간을 살지요.
서로 뿌리가 다른 같은 시간을.
향기롭게, 때로는 악취를 풍기며
바구니에서 떨어져내리는 꽃들이 있네요.
물에 젖은 오아시스를 거절하고
고요히 시들어가는 꽃들.
그들은 망각의 달콤함을 알고 있지요.
하지만 꽃바구니에는 생기로운 꽃들이 더 많아요.
하루가 한 생애인 듯 이 꽃들 속에 숨어
나도 잠시 피어나고 싶군요.
수줍게 꽃잎을 열듯 다시 웃어보고도 싶군요.
자, 받으세요, 꽃바구니를.
이월의 프리지아와 삼월의 수선화와 사월의 라일락과
오월의 장미와 유월의 백합과 칠월의 칼라와 팔월의 해바라기가
한 오아시스에 모여 있는 꽃바구니를.
부지런히 전부 잃어버리자
게으르지 않게 잊어버리자
망각의 리듬에 따라 꾸준히 놓아버리자
매일 자신에게 잘 잊느라 수고했다고
늘 스스로에게 잘 잃느라 고생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말자
이미 줘버린 이야기
모두 내어준 목소리
돌연 비어낸 주머니
다소 부족해도
불쑥 아쉬워도
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잃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주문은 신명나고
후회는 사라지고
더 할 수 없어 부끄럽습니다
자꾸 미안해지니까 잊어야지
매번 으스러지니까 잃어야지
내가 소멸될수록 우뚝 솟는 것들을 수시로 상상해
https://youtu.be/Atnsfat5Y5k?si=vqQ0MFV0mMhKGi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