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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불편함이 좋아서 늘 기대돼

챌린지 84호

by 이숲오 eSOOPo

최초의 님


한 용 운



맨 첨에 만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 첨에 이별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 첨에 만난 님과 님이 맨 첨으로 이별하였습니까 다른 님과 님이 맨 첨으로 이별하였습니까


나는 맨 첨에 만난 님과 님이 맨 첨으로 이별한 줄로 압니다

만나고 이별이 없는 것은 님이 아니라 나입니다

이별하고 만나지 않는 것은 님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님에 대하여 만날 때에 이별을 염려하고 이별할 때에 만남을 기약합니다

그것은 맨 첨에 만난 님과 님이 다시 이별한 유전성의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만나지 않는 것도 님이 아니요 이별이 없는 것도 님이 아닙니다

님은 만날 때에 웃음을 주고 떠날 때에 눈물을 줍니다

만날 때의 웃음보다 떠날 때의 눈물이 좋고 떠날 때의 눈물보다 다시 만나는 웃음이 좋습니다

아아 님이여 우리의 다시 만나는 웃음은 어느 때에 있습니까




내 방 한쪽 벽면에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된 에어컨이 선반처럼 붙박혀 있다

이를 대신할 부채가 있으니 고칠 생각이 멈춰 있다

올해도 느리게 살 작정이다

느린 것은 불편하다

불편해서 재미있는 것도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다

너무 더운 날에는 등목을 하고 부채질을 하면 춥다

간헐적인 것은 무엇이든 불편하다

글을 쓰는 것도 부채질처럼 느리고 불편하다

그 점을 제거한다고 진화가 아니고 발전이 아니다

삶은 한 장씩만 뜯어내야 하는 달력이 있고 한 걸음씩만 내디뎌야 오르는 계단이 있고 한 술씩만 떠야 비우는 밥그릇이 있다

빠르다는 것이 안락하지만 안전하지는 않다

느리고 불편하는 것은 구차하지 않다

불편에 대해 불평이 서두르면 흔들린다

안락이 부러우면 지체없이 옮겨가면 될 일이다

간혹 나처럼 불편을 선택하는 이도 존재한다

느리게 삶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불편한 것이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 진가를 획득하기 위해

https://youtu.be/1H_eaHJt3bk?si=lR3S83B5azKNO_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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