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답고 혹독한

챌린지 86호

by 이숲오 eSOOPo

꽃싸움


한 용 운



당신을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서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엽을 가지고 한 손에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싸움을 하여서 이기는 것은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 맞추겠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서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삶은 선형적인가 순환적인가


삶이 선형적이라면 세론이 되고

삶이 순환적이라면 담론이 된다


삶이 언어와 비슷한 체질이라면 선형적이고

삶이 계절과 유사한 체형이라면 순환적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규칙에 익숙한가

언제나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머무는가


삶도 빛처럼 물질이었다가 파동이었다가

제 모습의 정체를 쉽게 단정하지 못하게 흔드는

그 전환의 시점에서 잠깐 보였다가 감추어 버린다


한 발짝씩 늦게 반응하는 동안 삶은 흘러간다


언제나 삶에서의 현재는 가혹한 풍미가 난다


그 풍미의 스펙트럼은 한 일생을 이루고 펼친다


한 지점도 겹치거나 반복되지 않는 놀라운 배열


이토록 아름답고 혹독한 흐름을 삶이라고 부른다


https://youtu.be/qGOcBcuJYsQ?si=g3wf35H3bw6mGu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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