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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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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그리운 날에는 푸르디푸른 곳에서 맘껏 푸르르자


푸른 곳이 사라져 보이지 않으면 고등어의 푸른 등으로 내 눈을 강타해 퍼렇게 멍이 들게 해서라도


잘 쓰고 싶어 안달할수록 손 끝의 잉크가 마른다


운명에도 없는 글을 쓰려한 탓이 가장 큰 원인이다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의 방치는 댐에 가둬둔 물과 같아서 살피지 않으면 범람해서 일상을 덮친다


어서 그 목록들을 두 번씩 읊조리며 노트에 적는다


쓰면 쓸쓰록 해야하는 일들보다 절박하고 기특하다


무엇이 급한지도 모르고 어설프게 내달린 속도가 부끄럽다 소중한 것들은 이다지도 늦게 도착한다


보이는 것들만 외면해도 적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주말 아침에 내리는 비는 아늑한 다락방과 닮았다


얇게 덮힌 먼지만 털어내면 깊은 상상이 포근하다


아무리 숙련된 자도 수련을 게을리하면 불량품을 낳는다 낳고도 낳은 줄도 모르는 순간 잊혀진다


마음이 무거워져 어딘가 그 마음을 펼쳐놓고 듬뿍 위로받고 싶을 때 쇼팽처럼 피아노라도 있었다면


누워 팔뚝으로 눈을 덮고 가장 푸른 것을 그려본다


그리운 것들이 하나씩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져간다


곁에 있을 때 완벽했던 것들이 떠나자 찌그러진다


피아노가 없어서 장바구니에 읽을 책을 가득 담고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다 비흡연자답게


단것보다 쓴것이 당기고 짠것보다 슴슴한 게 좋고

웃기는 사람보다 재미없는 사람이 편한 그런 날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고 싶어라

가사 없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길 아닌 거릴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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