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의 회랑에서
대설이 온화하다
눈을 품지 않고 눈을 뜨게한다
한밤의 폭설이 한바탕 지나고 지붕마다 고인 눈뭉치에서 굵은 물들이 처마끝마다 비처럼 내린다
겨울에는 깊은 산속 음악감상실로 가자
이층 높이의 천장이 아득하고 벽면이 오래된 스피커로 웅장한 그곳에서 클래식을 감상하자
랑랑의 피아노곡이 끝나자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가 흐른다
통창 너머로 한낮은 차가운 태양이 골짜기 사이로 지나가고 섬처럼 듬성듬성 뿌리내린 집들이 웅크리고 있다
음악은 귀가 아닌 눈을 자극한다
자꾸 감게 하고 이따금 번뜩이게 하니 기이하다
좋은 소리는 나쁜 눈을 고치는구나
계절을 거스르는 노래가 흐르고
잊고 싶은지 가고 싶은지 모르는
여기가 어디인가를 잊게 하는 순간은 소중한거지
음영 가득한 곳에서 성악가가 슈베르트의 가곡 거리의 악사를 읊조리듯 부른다
Keiner mag ihn hören,
아무도 그의 연주 듣지 않네
Keiner sieht ihn an;
아무도 그를 보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