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충분하다 느낄 수 있도록
Eat Well, Sleep Well, 최근 10년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가장 많이 한 말이다. 나와 만났던 아이들의 세상에는 먹을 것은 넘쳐났지만 잠은 충분하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목표를 이루려고 스스로 잠을 줄이는 경우는 내가 만났던 초중학생의 경우 5%도 채 되지 않았다.
성인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갑자기 풀린 시간과 자율의 무게를 제대로 견디지 못하는 대학생도 많다. 사회가 정해둔 최고 범위에 들기 위한 사다리를 보며 맹목적으로 스펙을 쌓고 관계를 엮으려 치열하고, 뒤쳐진다 생각하는 아이들은 앓고 곪으며 헉헉댄다. 비교하고 따라가며 자신을 잃는다.
'잠을 더 많이 자고 싶다'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주말을 가득 채운 학원스케줄에서부터 신경정신과에서 받은 '불안 장애'나 '공황 발작' 진단서를 공결용 서류로 제출하는 대학생 아이의 흔들리는 눈빛까지 개인적인 상황이나 병리로만 볼 수 없는 사회적 좌절을 읽는다.
잠을 희생하고라도 전속력으로 따라붙어야만 한다는 강박적 사회 정상의 기준이 높다. 최고에 대한 부모의 욕망에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특히 사교육의 비뚤어진 현혹에 빠지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불행하다.
날고 싶은 사람이 날면 된다, 낮게 날든 높게 솟구치든. 걷고자 하는 사람은 걸으면 된다, 빨리 걷든 뒤로 걷든. 멈추어 둘러보고 싶은 사람은 가만히 기다려주는 여유가 그리운 시대에 산다. 날고 있는 사람과 걷고 있는 사람과 멈춘 사람과 기다려주는 사람이 서로 나누며 존중하며 공존하면 좋겠다.
초등학생이든 성인이든 자기만의 편안한 속도에서 불안을 덜 느끼며 살기를
부모로서 못 이룬 것에 대한 욕망으로 아이들을 억압하지 않기를
선생으로서 등급이나 등수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특별한 세상으로 인정해 주기를
영어든 한국어든 그 어떤 정보든 지식이든 필요할 때 하고 싶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서로 응원해 주는 사람이 많기를
비교하지 말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부모가 선생이 동료가 친구가 되기를
충분하지 않아 빚으로 남은 잠의 열기가 사회를 녹슬게 한다. 제대로 잠을 자지 않으면 몸과 마음을 사회적 기대 수준에 맞추기 위해 인위적 조절과 통제에 기댈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을 최대한 팽팽하게 조이는 것이 정상이 되어 비정상으로 규정된 사람들에게 몸을 팽팽하게 하는 약을 먹으라 한다. 마음을 조여 아무리 뜀박질을 해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사회는 갖가지 에너지 드링크와 더 강력한 각성을 주는 민간 조제 드링크의 비법에 골몰한다.
최근 영유아에게 영단어 5만 개를 학습시키겠다는 사교육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 또한 사립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학습해야 할 영어 단어 목록을 보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들이 모국어를 배울 때 6세에 14,000 단어를 18세쯤 되어야 60,000개를 습득**한다. 그런데 모국어도 아닌 제2외국어로서의 영어를 영유아에게 5만 개라니 그 死교육의 학습 상황에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잠이 부족한 사회는 피로하게 질주만 하다가 소진되어 생기를 잃게 되고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의 무게에 지칠 가능성이 높다. 지친 사람들이 많아져 자기 안에만 침잠하느라, 서로 연대하며 공존하는 법을 잊는 사회가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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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어떻게 말을 배우나' by 윌리암 오그레이디 저, 박경자 역, 2005, 고려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