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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30. 2022

나의 초능력들 8

라디오 듣기 : 상상이라는 욕망

소리를 보고 만지고 맡는 순간


이제 라디오는 추상적 개념이다.

라디오는 더 이상 안테나를 뽑아 세우고 켤 수 없다.

켜고 끄는 건 스위치의 동작원리인데 이제는 그런 라디오를 곁에 두는 이가 드물다.

사라진 라디오의 몸.

그러나 영혼은 여전히 구천을 떠돌며 주로 스마트폰에 깃들어 머물곤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다수가 믿기 시작하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세지는데 라디오가 그러하다.

다행히도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를 죽이지 못했다.

라디오는 태생적 생리가 유별난 덕분이다.

티브이는 눈을 사로잡고 라디오는 귀를 사로잡는다고 생각한 오류가 라디오의 멸종을 예언한 것이다.

본다는 것의 위력은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디오는 귀를 장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거머쥐었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오히려 티브이는 상상을 거세시킨다.

그러니 티브이는 라디오를 포함할 수 없다.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믿는 자에겐 티브이가 친근할 것이고 상상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자에겐 라디오가 친숙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보이는 것 또한 스스로 폭넓게 선택해서 보는 것만이 왜곡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 생각해 티브이 리모컨을 손에서 떠나보냈다. 내가 볼 것들은 시청률이라는 잣대로부터 자유로운 것들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일대일 소통에 근접하다. 나에게만 디제이는 속삭인다. 잘 자라고, 행복하라고!

우리는 티브이로 뉴스를 보다가 앵커에게 엽서를 쓰고 싶어지진 않는다. 라디오는 펜을 들게 한다.

그 수신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내일 아침 빨간 우체통에 내 마음은 동그랗게 던져질 것이다. 영원히 순환되는 교감을 라디오는 생산할 줄 안다. 볼 수 없다는 아름다운 약점을 지녔기에!


나의 초라한 능력은 라디오라는 실체가 없는 라디오를 애써 찾아 듣는 것이다. 거기에서 쌀도 밥도 돈도 나온 적이 없지만 상상이라는 발전發電을 한다. 매번 감전이 되면서 영감을 얻고 영혼을 산책시킨다. 오늘 아침에 깨어 보니 스마트폰 라디오가 밤새 흘러나오고 있었음을 알았다. 티브이를 켜놓았다면 수돗물을 틀어놓고 잔 것처럼 불쾌했을 것이다. 라디오는 마치 가습기같이 곁에서 밤새 감성의 습도를 유지해준 것 같았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보고 촉각하고 냄새 맡는  상상의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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