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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2. 2022

나의 초능력들 30

고르기 : 단점도 수용하겠다는 각오

날 성숙게 한 건 팔 할이 선택이었네


아침에 눈을 떠 몸을 일으킬 때부터 밤에 잠자리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호흡의 횟수만큼 선택의 연속이다. 5분만 더 잘까 어떤 옷을 입을까 한산한 버스에 올라타서도 어디에 앉을까 점심메뉴로 무엇을 먹을까 아까 받은 문자의 답을 지금 할까 인사부터 할까 바로 답할까 에둘러 거절할까 애매하게 걸쳐둘까 출간할 책 제목은 무어라 지을까 쿠바로 가는 티켓은 언제 예약할까 끝도 없는 선택의 생각들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지난 결정에 대한 복기까지 선택의 범주에 넣는다면 선택이 아닌 생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선택은 두 부류가 있다. 세수할 때 한편에 놓인 두 몽땅 비누 중 어느 것을 쓰느냐의 무의식의 선택과 어디로 휴가를 갈 것인가와 같이 의식적 선택이 있다. 전자는 그 결과의 차이가 크지 않는 반면에 후자는 선택에 따른 후회와 아쉬움의 기복이 크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그나마 최악을 피할 수 있을까.


보통 선택을 할 때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고르듯 가장 좋은 것을 고르려 한다. 물론 나도 그러하다. 그런데 대상이 과일을 넘어 사람이나 무형의 상황이나 공간 혹은 진로라면 복잡해진다. 가장 좋은 것이라는 기준이 모호해지는데 이때 선택자는 대상의 장점만을 보는 오류를 범한다. 나는 독특하게 비교대상들의 장점들은 밀쳐두고 단점들에 주목한다. 단점마저도 수용할만한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장점을 보고 선택한 대상은 더 좋은 장점의 보유자가 나타나면 흔들린다. 그런 선택들은 장점들의 획득이었기에 매번 불안한 선택에 그치고 만다. 교체 가능하다면 비용이 많이 들 것이고 불가능하다면 긴 시간 자책할 것이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매 순간의 선택을 나름의 역설적인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뭘 고르란 거야?'는 선택지의 궁색함보다는 '이것도 고를 가치가 충분하군' 이 된다. 바닥마저 애정하기에 선택된 것들은 지속력이 보장된다. 이 글쓰기 또한 일반적인 선택 기준인 글쓰기의 장점만으로는 매일 실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부터 글쓰기의 단점을 끌어안았기에 오늘도 멈추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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