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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1. 2022

나의 초능력들 29

경청 : 타인에게 가는 유일한 무료티켓

잘 듣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유혹이 되고


입을 닫고 귀를 연다. 여기서는 엄밀히 말하면 귀는 여는 것보다 기울인다가 적절한 대응이다. 여는 것은 마음이 할 일이고 기울이는 건 몸이 하는 일이다. 귀는 얼굴에 있는 감각 신체기관 중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손을 오목하게 모아 귀에 가까이 대거나 몸을 틀거나 숙여야 더 잘 감각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눈코입처럼 얼굴의 정면에 있는 것과는 달리 귀만 유독 측면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음모에 가려진 성기처럼 긴 머리카락에 귀를 보이지 않게 가리고 다니기도 한다. 이처럼 듣는다는 것은 은밀하고 유혹적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는지.


똑같은 이야기도 듣는 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남는다. 그래서 지구상의 인구만큼 귀 모양도 각양각색인가 보다. 그야 물론 소리의 파동에 따른 마음의 요동일 텐데 귀는 그 관문이자 집성기가 된다. 귀의 각도가 들리는 정도와 명확성을 결정하기에 몸을 기울여 단순 듣기를 넘어 경청하려는 것이다. 이름하야 기울여 듣기이다.


경청을 하는 것은 소리에 담긴 표면적 의미 이해와 함께 상대의 내면과 정확하게 만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조금만 더 기울여 들어가 보면 상대의 처지와 정서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외지에 있다가 명절에 고향에서 사람들을 만나 사투리를 쓰는 것은 경청하는 이들의 당연한 리액션인 셈이다. 잘 듣기에 잘 보이고 잘 이해되고 잘 느낀 덕분에 잘 말하려 애쓰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자세히 내 몸과 마음을 상대에게 기울여 듣기를 꺼리게 된다. 상대의 처지를 깊이 아는 것이 두렵거나 성가신 일이 될 수도 있어서다. 그러니 차분히 들어야 할 타이밍에 주책스런 내 입이 부지런히 공허하고 바쁘기만 한 말들을 쏟아낸다. 잘 듣는 것은 이타적 행위이고 유창한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가끔 경청의 귀재 앞에서 나 혼자 장시간 말들을 뱉어내고 침묵의 위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말로가 아닌 것으로 더 강력하게 교감할 수 있는데 이 열쇠는 듣는 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


나의 초라란 능력은 누군가의 말을 우선 몸을 충분히 기울여 들어보는 것이다. 내가 비록 아무런 솔루션을 안겨줄 수 없을지라도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위안을 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허투루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전해야 한다면 이 정도는 아껴 말할 수 있다.

"아,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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