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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0. 2022

나의 초능력들 28

한계 맛보기 : 나아가고 있음의 뚜렷한 증후

세상에서의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오늘도 이러고 있어


또다시 한계와 주먹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낯선 친구였는데 자주 만나다 보니 익숙한 형제가 되었다. 한계는 가만히 있는 나를 찾아온 적이 없다. 언제나 내가 기를 쓰고 달려가야만 그곳에 늘 그 녀석이 떡하니 서 있다. 한계를 만날 때마다 나는 빼어난 미모의 여인을 마주한 듯 부끄러웠고 작아졌다. 그것을 내 능력의 부족이라고 자책하며 내일은 비켜 가 보리라 다짐하지만 어김없이 마주치고 만다. 그곳에 다다른 나는 턱 밑까지 숨이 차 오르고 있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날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다행히 날마다 한계에게 가는 거리가 멀어지기도 해서 그런 날에는 나름 우쭐해지기도 하고 뿌듯해지기도 하니 그것이 겁난다고 멈추지는 않았다.


한계를 맛본다는 것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주눅 들게 하는 경험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계를 체험한다는 것은 움직이는 자, 그러니까 도전하는 자만의 특혜가 아닐까. 멀리 걸어봐야 내 체력의 한계를 느껴 운동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고, 시험도 쳐 봐야 내 실력의 한계를 느껴 배움의 가치를 자각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한계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저 언덕 너머의 낯선 보물일지도 모른다. 손에 쥐지 않으면 그림 속의 떡이니 그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어서 가서 한계를 만나고 거머쥐고 심지어 맛도 보아야 한다. 그것은 지난날의 보잘것없는 나를 뛰어넘는 비밀스러운 약속이 될 것이다. 한계를 느끼고 싶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단 하루도 한계를 맛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도 마약을 하지도 않기에 온전히 맹맹한 정신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불리지 않고 이태리타월로 때를 미는 것처럼 힘겨운 작업이었다. 모니터 앞에서 자판기에 두 손을 단아하게 올려놓고 마치 악보를 잃어버린 피아니스트처럼 한참을 멍하기 있기가 일쑤였다. 그놈의 술 마시면 끝없이 내게 오던 별처럼 쏟아지던 영감들도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쓰려고 하면 모두 경로당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한계로 떠나는 여행이었고 그 길은 수행하는 길이었고 차라리 도착지가 있다면 한계사라 부르고 싶었다.


나의 초라한 능력은 한계를 느낄 것이 뻔하다는 알면서도 한계를 만나러 가고 그놈을 집어 들고 맛까지 보는 일이다. 한계의 맛이 궁금할 수도 있겠다. 첫맛은 떫고 씁쓸하나 씹을수록 신맛을 거쳐 단맛으로 중독성을 가진다. 그래서 어설프게 첫맛에 질려 뱉어내면 뒷 맛의 달콤함을 놓치고 만다. 한계를 맛보기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대체로 끝 맛까지 음미한 자들임이 분명하다. 이 맛에 맛들이는 순간 누구도 다른 맛을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 미각은 과거로의 회귀를 촉발한다. 마들렌의 효과처럼 한계의 맛은 과거의 무수한 실패를 긍정적으로 활성화시키고, 한계를 느끼며 멍든 시도들은 미래의 재시도에 내성을 갖게 해 강력한 나로 재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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