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감 > 교감 > 공감
사물과는 촉감할 수 있으나 교감이나 공감을 할 수 없다.
사물에는 감정이 없기에 교감 이상은 불가능하다.
동물과는 촉감과 교감을 할 수 있으나 공감은 할 수 없다.
동물에게는 주장이나 의견이 없기에 공감은 불가능하다.
동물에게는 감정이나 욕망이 행동으로 표출되나 언어의 부재로 공감까지 가 닿을 수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만 촉감, 교감과 공감을 모두 할 수 있다.
공감은 언어의 보유가 불가피하다.
언어는 존재를 가두는 집이자 존재를 구성하는 울타리다.
반드시 발화되는 언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침묵한 채 생각을 하면서도 언어로 사고한다.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을 할 때에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하는 것으로 공감능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말은 성글거나 모양변형에 능수능란해서 포장이나 화장으로 본래의 모습을 쉽게 변신할 수 있다.
공감을 위해 말을 사용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공감은 사물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인 촉감이나 동물에 대한 진정한 태도인 교감을 뛰어넘는 고도의 집중과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어설픈 촉감과 엉성한 교감은 그 뒤에 돌아오는 대가가 가혹하지 않지만 불성실한 공감은 그 대가가 지진보다 참혹하고 천둥보다 오금 저린다.
도시가 빽빽해지자 도로가 실핏줄처럼 구석구석까지 뻗는다.
비포장도로는 낭만적인 과거의 기억으로 박제된 지 오래다.
자동차 두 대가 마주 보고 지나갈 수 없는 골목길도 많아졌다.
한 대만 겨우 지나갈 길이 커다란 도로 사이에 위치할 경우 일방통행만 허용된다.
한쪽 방향으로만 열어둔 좁은 길은 반대편에서 불쑥 나타날 염려는 잠재운다.
내가 갈 길만 바라보면 되기에 안정감을 준다.
때로는 가까운 길을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일방통행이 안전속도를 위반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되면서 부정적인 점도 나타나지만 대체로 교통체증의 빈도를 낮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스템이다.
그런데 왜 인간관계에 인용하면 부정적으로만 느껴질까.
'일방'이라는 단어가 '일방적'이라는 표현으로 이어져 '불통'으로 연상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com/watch?v=L6SJqbTG4wk&feature=shares
눈물은 왜 짠가_함민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