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흘리는 지문들 : 이메일 주소
태어난 해나 학번을 넣어서 나이를 묻지 않아도 연배를 가늠하게 배려하는 이는 매사가 투명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상대를 겪으면서 나의 예측은 대부분 보기 좋게 빗나가지만 명함을 받아 쥐면 여전히 눈이 이메일에 간다.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말해 달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수 있다.
최신 영화를 보러 갔다.
거대한 고래 같은 몸에 갇힌 한 사내의 이야기다.
까마득한 과거의 실수로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며 죽음을 기다린다.
그가 수시로 내뱉는 말들은 벼랑 끝에 선 절박함 그 자체다.
말로도 버거울 때에는 글을 쓰며 이겨낸다.
제자들의 에세이를 지도하기도 하고 8년 만에 만난 딸의 에세이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에게 글은 말이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들만 쓰라고 독려한다.
그것이면 어메이징 하다고, 그것을 쓰는 너 또한 어메이징 한 인간이라고.
누구나 위대한 채 존재하며 그것을 꼭 알아보기를 죽는 순간까지 외친다.
극장의 불이 켜지고 올라가는 크레딧 너머로 배경음악은 아무래도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소리 같았다.
나 또한 거대한 아집과 편견의 고래집을 덮어쓰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상영 내내 자문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