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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07. 2023

어쩌다, 시낭송 058

우리가 흘리는 지문들 : 이메일 주소

I    당신의 이메일주소를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명함을 건네받으면 그의 직책보다 이메일을 본다.

초면일수록 이메일주소를 유심히 본다.

그가 사용하는 이메일 회사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 앞에 자리한 주소의 작명감각에 주목한다.

자신의 이름 영어이니셜만으로 만들기도 하고

풀네임으로 기다랗게 만드는 이는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진지하고 단정한 인상을 준다.

숫자로만 구성된 경우는 중요한 순간이나 메시지를 기억하거나 알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꿈을 넌지시 던지기도 하고 추억의 대상을 숨겨 놓기도 한다.

명함에는 각각의 지문 같은 주인의 취향과 성격이 찍혀 있다.

거기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어서 그곳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알파벳의 나열은 한글이름을 영어자판으로 쳐서 외형에 신경 쓰지 않는 수수함으로 다가온다.

태어난 해나 학번을 넣어서 나이를 묻지 않아도 연배를 가늠하게 배려하는 이는 매사가 투명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상대를 겪으면서 나의 예측은 대부분 보기 좋게 빗나가지만 명함을 받아 쥐면 여전히 눈이 이메일에 간다.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말해 달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줄 수 있다. 




II    고래의 꿈보다 고래 같은 고집을 벗고 싶어   


최신 영화를 보러 갔다.

거대한 고래 같은 몸에 갇힌 한 사내의 이야기다.

까마득한 과거의 실수로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며 죽음을 기다린다.

그가 수시로 내뱉는 말들은 벼랑 끝에 선 절박함 그 자체다.

말로도 버거울 때에는 글을 쓰며 이겨낸다.

제자들의 에세이를 지도하기도 하고 8년 만에 만난 딸의 에세이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에게 글은 말이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들만 쓰라고 독려한다.

그것이면 어메이징 하다고, 그것을 쓰는 너 또한 어메이징 한 인간이라고.

누구나 위대한 채 존재하며 그것을 꼭 알아보기를 죽는 순간까지 외친다.

극장의 불이 켜지고 올라가는 크레딧 너머로 배경음악은 아무래도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소리 같았다.

나 또한 거대한 아집과 편견의 고래집을 덮어쓰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상영 내내 자문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  




III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https://youtube.com/watch?v=acZ5NxfGmJI&feature=sh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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