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Apr 14. 2023

어쩌다, 시낭송 096

마음을 헹구는 일

I    꼭 글쓰기가 모두에게 최선은 아니겠으나


마른기침이 잦아져 맥문동탕을 복용했다.

폐가 건조해지는 느낌이 들어 폐에 물을 대기 위해서다.

일상의 리듬이 깨지자 몸에서 반응이 온다.

해야 할 시기에 하지 않고 방치하면 어김없이 후폭풍이 되어 나를 친다.

2개의 발표보고서, 1개의 연구보고서, 3개의 종합시험을 앞두고 있다.

4월의 하늘은 여전히 눈부시게 나른하고 슬프다.

황사처럼 날마다 덮어쓰는 스트레스는 과부하된 몸을 뒤흔든다.

끼니마다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처럼 쌓여가는 건 걱정보다 느슨한 의지.

어릴 적 식사 후에는 꼭 숭늉으로 입안을 헹구곤 했다.

이렇다 할 소화제가 없던 시절 숭늉은 효과적인 후식이었고 헝클어진 입안을 정리하는 쾌적함을 주었다. 구강청결제와는 달리 위장운동을 돕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지만. 

머리를 감을 때에도 샴푸로만 씻어내면 뻣뻣해지는 머리카락을 조금을 달래는 린스를 꼭 했다.

더 깨끗해지는 느낌보다 샴푸의 비누성분을 남기지 않는 역할을 더 기대한 것 같다.

일을 행하고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늘 헹굼의 절차는 경건하고 요긴했다.

날마다 숨 쉬듯 생각을 하고 주어진 일을 하고 타인들과 관계하면서 늘 비슷해 보이지만 나의 하루는 다른 표정과 맥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정리와 헹굼이 있어야 한다. 제 때 헹구지 않으면 보이지는 않으나 지워지지 않는 자국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 거슬릴 것이다. 다행히 하루를 살아가는 행운을 잡았다면 헹구는 행위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러하다.

마음을 헹구는 일이 글쓰기다. 




II    살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약은 참 이상하다.

살고 싶을 때에도 약을 찾고 죽고 싶을 때에도 약을 찾는다.

약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이상한 것이겠구나.

약처럼 극단의 상황에서 모두 찾게 되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글쓰기가 그렇지 않을까.

무엇을 도모하려고 할 때에도 글을 쓰고 무엇을 마무리할 때에도 글을 쓴다.

글은 쓰면 써지고 안 쓰면 안 써진다.

글로 쓴 책은 보기 싫어도 나를 위해 쓴 편지는 설렌다.

영화감독은 영화 한 편만 만들어도 평생 감독이지만

작가는 날마다 써야 작가다.




III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https://youtu.be/BDWWptdqQXQ

가을날_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전 15화 어쩌다, 시낭송 09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