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Apr 15. 2023
I 오늘이 이토록 광활할 줄이야
현재시각 영시 이십칠 분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는 시점은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지점과 같다.
시간은 하루를 넘어가는데 오늘이라고 간주한다.
잠들기 전까지는 느낌상으로 오늘이다.
적어도 우리에겐 오늘이 스물네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순우리말에 어제, 오늘은 있어도 내일은 없다.
그런데 모레는 있다.
오늘의 최대 길이는 마흔여덟 시간인 셈이다.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을 산다.
늘 짧은 오늘의 시간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경계마다 경비병이 아닌 기회들이 지키고 있다.
그 기회의 카드에는 세상의 익숙한 기준들을 배반하는 마술 같은 기능들이 있다.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는 기능.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를 잊는 기능.
어제로 둔갑하려는 오늘을 연장하는 기능.
경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용기를 확인할 수 있는데 모두가 가진 건 아니다.
용기가 대체로 무모한 이들의 전유물 같지만 사실 유연한 이들만이 보유하고 있다.
그만이 자신을 뛰어넘고 세상을 바꾼다.
과거에 여전히 머물거나 미래를 함부로 뛰어넘지 않고 온전하게 현재를 살아간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산다.
마치 살아온 과거와 펼쳐질 미래 사이에서 틈새처럼 순간을 사는 것 같지만 현재는 탄력적이어서 물리적 시간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허송의 하루와 충만한 하루가 가능하다.
모든 것이 가능하면서 어떤 것도 불가능한 건 시간의 성질 때문이다.
열시만 되면 꿈나라로 가는 내가 모처럼 오늘의 시간을 확장해 보았다.
경계가 이토록 광활하고 신비로운지를 새삼 느낀다.
II 흐릿하다고 희미해선 안돼
아웃포커스로 일관하는 영화를 상영 내내 보는 건 고문에 가깝다.
작가는 흐릿한 이미지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겠으나 보는 내내 화가 난다.
영화적 메타포로 표현하거나 자신만의 독특한 고민이 보여야 예술이 아닐까.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면 이것이야말로 포르노시네마.
놀라운 건 몇몇 평론가들의 억지 해석의 옹호였다.
거장의 작품이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본다.
전작 스물여덟 편을 모두 극장으로 달려가 본 팬으로서 이번 작품은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III 왜 그땐 몰랐을까 그때가 노다지였음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_정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