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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18. 2023

어쩌다, 시낭송 100

더 큰 도약을 위한 배꼽파기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https://youtu.be/PgZ6inTkhso




고마워! 브런치스토리!

내 이럴 줄 알았다.

십진수에 익숙한 인간에게 백일은 의미가 각별하다.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정성을 들여서 하는 인간의 일에는 하늘도 가만있지 않는다. 도울 일을 고민한다.

늘 마음먹고 하는 일에는 고비들이 즐비한데 특히 구십 일째를 넘기자 아홉수의 저주인지 독감몸살이 왔다.

종일 사경을 헤매면서도 브런치를 머리맡에 두고 느릿느릿 타이핑을 하며 마지막 시험대의 유혹을 넘겼다.

브런치에서 백일 연속 쓰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이맘때쯤 소설을 백일 간 쓴 적이 있다.

백 가지 다른 표정의 장애물들이 날마다 변신하며 내 앞에 나타나 방해했지만 이를 관통하고 나니 장편소설 분량의 원고뭉치가 모여 내 앞에 다가왔다.

그 결과물을 몇 군데 투고했고 눈 밝고 사려 깊은 어느 문학전문 중견 출판사에서 출간하자는 제안이 왔고 올해 늦가을에 내기로 한 상태였는데 바로 오늘! 대표가 직접 연락해 초여름으로 출간계획을 앞당겨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공교롭게도 브런치 글쓰기 백일 프로젝트 완성 이브에 굿뉴스를! 

일정이 밀릴 수는 있어도 당겨지기가 힘든 건 이미 내 책 출간순서가 올해 끄트머리이고 앞의 일정이 빈틈이 없단 확인을 여러 차례 들은 상태였으므로 이건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백일 동안 
글을 쓰고 시를 낭송하고 나니 
무능한 인간에서 책 쓰는 곰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백일 후에 인간이 되는 것도 놀랍지만 무능한 한 인간이 브런치스토리에 하루도 빠짐없이 글과 낭송을 올리며 백일 후에 책을 낼 수 있는 끈기와 맷집을 가진 곰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사건이라고 본다. 

어떤 이는 말한다. 

내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게 글 쓰라고 닦달하는 것도 아니니 편안한 기분으로 쓸래요. 취미로 하면서 나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요.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뜻 동의하기가 내키지 않는다.

사물도 그렇고 동식물도 그렇고 무형의 대상도 그렇고 행위의 대상도 나의 태도에 절대적으로 정확한 수치만큼 반응한다.

내가 가벼이 여기며 하는 행위는 나와 대상의 사이에서 딱 그만큼의 자기장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내가 전심을 다해 하는 행위는 그것이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의 잠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내부 결속을 하다가 어떤 임계점에 다다르는 순간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에너지로 폭발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영리한 듯 판단했던 속물적 계산들이 쩨쩨하고 소박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무지개는 돈을 주지 않고도 누구나 감상할 수 있지만 만들어 내려면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비는 흔한 자연현상으로 그저 공짜처럼 내 앞에 펼쳐지지만 인공구름을 형성해서 비 내리게 하려면 엄청난 예산과 시행착오가 전제된다.

태양도 그러하고 공기도 그러하고 사랑도 그러하고 마음도 그러하고 날마다의 글쓰기도 그러하다.

신은 장난꾸러기 같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거저 던져주고 쉽게 그리고 당연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누구나 잠깐은 글을 편히 쓸 수는 있지만 매일 글을 쓰는 것은 편하지 않다.

짧은 시간의 글쓰기와 지속적인 글쓰기! 그 사이에 어떤 비밀의 실마리가 있다.

거기에 무수한 열지 않은 보물상자와 풀어보지 않은 선물상자가 있다.


인도의 철학자 오쇼 라지니쉬는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배꼽이 왜 필요한가요?

책을 보면서 감자를 먹을 때 소금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안성맞춤이라네.

나는 지금 백 일간의 글들을, 소금을 손가락으로 짚듯이 한 소금씩 한 소금씩 배꼽에 옮겨 담고 있다.

한적한 어느 오후에 볕 좋은 평상에 비스듬히 누워 세상이라는 감자에 찍어먹은 소금을 담듯이.

정. 성. 껏.

소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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