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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12. 2023

부끄러운 말

0334

이른 새벽 창을 연다.

찬 바람과 함께 새소리가 방 안으로 쏟아진다.

유독 서늘한 공기는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숲 속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새소리가 들린다.

온몸의 세포를 부리로 쪼듯 새소리는 뾰족하다.

새들의 이름을 안다면 하나씩 불러주었을 텐데.

기쁨의 호명을 하지 못하는 상태도 생활방기다.

한바탕 새들의 합창이 끝나자 가려져 있던 자동차 소음이 도드라진다.

아침에는 새소리가 차소음보다 우렁차고 세다.

환기된 방안의 창을 닫고 브런치의 글창을 연다.

이제부터 마음의 환기를 할 시간이다.

어제 성글고 거칠었던 말들을 글로 세척해서 빨랫줄에 널어야겠다.

 늘어진 말들의 건조를 지켜보며 다짐하겠지.


너무 신중하지 못했구나 그러지 말 걸
충분히 듣지도 않고 서둘러 말이 앞섰구나
상대를 북돋는 말보다
나를 내세우기 급급했구나


부끄럽고 낯 뜨겁다.

술을 원망하지만 안주보다 빈약했던 나의 말들을 글로 적자니 글자 사이에 들어가 숨고 싶어 진다.

글쓰기가 때로는 말의 잘못을 새삼 일깨워준다.

글쓰기가 아니었으면 말은 휘발되어 잊히고 발뺌을 하겠지. 어제처럼 말의 피해자는 없고 나 스스로가 못마땅한 상태에는 글쓰기가 적절한 처방이다. 객관적인 거울 보기 같은 글쓰기가 직방이다.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혼자이고 입을 닫은 상태가 된다. 이것만으로도 글쓰기는 묵상!

글쓰기는 부끄러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은 양심의 온도계니까 고장 나지 않게 보정해 주는 역할을 글쓰기가 도와준다.

말을 글처럼 한다면 이런 후회 따위는 없을까.


이따금 말로 상처를 받았을 때 글쓰기는 연고가 된다.

흉터마저 말끔히 사라지게 하는 건 어렵지만 쓰린 아픔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분명하다.

이토록 말과 글은 상보적이다.

어떤 이는 글을 말처럼 술술 쓰기도 한다는데 여전히 나에게는 글쓰기가 서툴고 느리다.

항상 지난날들보다 만만치 않은 하루를 받아 든다.

무수한 말들들 뱉어내고 여전히 다음날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때마다 참회의 글을 써내려 가겠지.

이렇게 반복하며 삶은 계속 익어가겠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그새 솟아오른 태양이 거대하다.

그 웅장한 해의 등장에 새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 고요하다.

내가 글로 담은 부끄러운 말들을 물어간 것이 틀림없다.

고맙다.

말 못 하는 새들도!

말을 돕는 글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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