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May 13. 2023
Festina Lente.
내가 알고 있는 말 중에서 가장 동그란 네모다.
천천히 서두르라니!
서두르는 건 빠르게 해야 어울리고 천천히 하겠다는 건 서두르지 않음을 전제로 하니 말이다.
무릎 꿇고 일어서라는 말이나 문 닫고 나가라는 말처럼 양립할 수 없는 두 행위의 배치 같아 보인다.
이는 역설보다는 다음의 문장과 결을 같이 한다.
천천히 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멈추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라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줄곧 마음속으로 되뇌는 말이기도 하다.
시작은 더디고 갈 길은 요원하다.
미약한 작은 걸음들을 하찮아하면 자주 멈추게 되고 멈춘 상태에서 바라보면 더 까마득해진다.
이 격언이 맘에 드는 이유는 지속의 막막함보다 포기의 대책 없음을 더 강하게 지적하고 더 엄하게 경고한다는 점이다.
천천히라도 '가는' 것은 역동의 상태이며
멈추게 '되는'것은 확정의 상태이다.
역동은 방향을 기지며 언제든 가속의 가능성을 가진다.
정지는 방향이 사라지며 다른 시작을 꿈꾼다.
지속적으로 가는 것은 템포보다 연속성이 관건이다.
처음의 천천히는 과정에서의 각기 다른 성질을 드러낸다.
그래서 전반의 절반과 후반의 그것은 동일하지 않다.
쌓아가는 전반부의 상승속도와 마무리하는 후반부의 하강속도는 다르다.
심리적인 속도와 물리적인 속도는 진행의 시점에 따라 유동적으로 작동한다.
그러기에 시작하는 시점에서의 천천히는 조급한 마음에 미래를 당겨보려는 오버스텝이 생기는데 이는 느린 속도를 결코 해소하지 못하고 섣부른 포기를 당기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보다 긴 호흡의 지속을 실현해 내려면 방점을 뒷부분에 찍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은 나의 유쾌한 자발적인 결정이지만 멈춤은 외부의 상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거나 지속의 방향을 외부로부터 방해받았다고 판단하기에 그 비중을 간과하기 쉽다.
늘 성숙한 선택은 최악일 때 내리는 기준으로 판단한다.
좋은 조건에서의 선택에는 유의미한 가치가 없다.
그래서 느림의 걱정은 떨쳐버릴 정도의 사소함이고
멈춤에 대한 엄중함은 두려워할 정도로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