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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14. 2023

초록 그리움

0336

초록은 볼수록 자라나는 색이다.

자신을 비틀어 변화하고 움직인다.

이처럼 모든 색이 약동하지는 않는다.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초록을 입으면 꿈틀거리는 생물이 된다.

인간은 무한함에 대한 동경과 경외가 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자연에 대해 그리워함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숲은 거대한 초록이다.

식물의 무수함에 앞서 색의 양에 압도당한다.

무채색이 아닌 색 중에 초록을 대신할 마땅한 색은 없다.

초록을 벗은 후에도 대체할 하나의 색을 고르지 못해 갈등하느라 알록달록 단풍지는 것이다.

그것마저도 탐탁지 않을 때에는 낙엽 져 색을 포기한다.

식물은 지혜롭게 색을 소유한다.

시나브로 생동하는 자신을 조용히 드러내며 초록으로 치장하는 건 생존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러다가 최종에는 꽃으로 비명을 지른다.

비명은 죽음의 소리다.

그래서 초록으로 꽃 피우는 식물은 드물다.

삶은 초록의 평범한 생동으로 죽음은 화려한 꽃으로 비명 지르는 것이 식물의 아이러니다.

사실 길을 걷다가 문득문득 꽃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유는 꽃의 아름다움보다 꽃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놀라는 게 더 크다.

세상천지가 꽃의 아름다운 비명소리로 행복한 아우성이다.


그리움은 품을수록 자라나는 감정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건너가려는 의지다.

여기가 누추해서 저기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는 과정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리움은 흔들리는 마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기필코 만들어내고야 마는 절박한 마음이다.

인간은 삼라만상을 지배하게 된 결정적 정서가 있다면 그리움을 꼽고 싶다.

그리워할 수 있음에 장악할 수 있게 된 인간이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누그러질수록 인간은 퇴행하는 것이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지배할 수 있는 그리움의 힘.

(인간관계에서 종국에는 더 많이 그리워했던 자가 떠날 때엔 미련이 없다.)

고작 손에 닿지 않는 대상과 무형의 상태를 갈구하는 것이 그리움의 전부라면 나는 이토록 그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결코 글을 한 줄도 써 내려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쓰는 자는 그리워서 글을 쓰는 자를 넘어서지 못한다.

왜냐하면 글을 읽는 이들은 스스로 그리움의 대상으로 영원히 남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좋은 독서는 읽으면서 그리움을 해소하기에 홀로 읽지만 혼자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때의 그리움을 '초록 그리움'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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