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May 11. 2023
자연스러운 것은 겸허하다.
걷기나 숨쉬기와 같이 뽐내지 않는 동작부터
쓰기나 말하기처럼 심리적 층위의 행위까지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면 보는 이는 불편하다.
전자는 생명과 건강에 대한 우려를 하게 하고
후자는 진심과 의도를 극도로 의심하게 한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음'에 만족하다가 '더 잘할 수 있음'으로 옮겨가려 노력한다. 이는 의미 있다.
말하기나 글쓰기를 더 잘하려고 시도하다 보면
더 나아지는 과정에서 두 갈래의 길을 만난다.
하나의 길은,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가 이미 고민한 것들로 채우는 방식이다.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에 검증된 노하우를 스펀지처럼 습득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적용하려 할 때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모든 상황에 일치하는 옳은 방식이란 없다.
좋은 수용은 엄격한 필터를 가질 때 가능하다.
무작정 받아들이면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다른 하나의 길은, 기존에 알고 있는 공식들을 지워나가는 방식이다.
마치 손에 쥔 망치를 뺏기는 당혹감이 들 수도 있겠다.
망각하는 게 아니라 뻔한 도식에 가두지 않는 것.
적어도 글을 쓰고 말하는 것에 개성과 창의가 자리하려면 천편일률이라는 도구를 내려놓자. 기본을 탑재하고 상상을 장착한 나만의 도구를 집어 들어야 한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니 그것에 의존은 늘 위태롭다.
사공의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 노가 아닌 사공의 마음이듯 철새가 먼 거리를 날아 이동하게 하는 것이 날개가 아니라 철새가 그리는 따뜻한 고향이듯 글을 쓰게 하는 것은 도구 너머의 무엇일 테니.
더 가벼워지기 위해서라도 지워야 한다.
덧칠한 수사를 지우고
익숙한 관습을 지우고
낯익은 표현을 지우고
더 자연스러워지기 위해 지우고 지워야 한다.
지우는 것이 능력인 경우는 글쓰기 너머의 삶 곳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덧말
매일 글쓰기의 한계는 사유의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깊이 입수하지 못하고 하루만큼의 숨만 참고 물질 후 수면 밖으로 나와야 하는 해녀 같다.
오늘의 완성도는 던진 화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허술하다.
우선 잠시 찬장에 넣어둘 예정이다. 추후 다시 꺼내 손질할 것이다. 글의 신선도는 기간이 얼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