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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18. 2023

복수학개론

0340

누구에게 복수하고 싶은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복수는 덧없는 덫일 뿐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가. 그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

우선, 복수를 유발한 하찮은 것들을 떠올려 분리수거를 한다.

종이/ 플라스틱/ 병  (귀한 것들의 분류의 예)
덧없음/ 부질없음/ 소용없음 (하찮은 것들의 분류의 예)

없는 것들을 분리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자칫 덧과 부질과 용을 분리하는 경우 복수에 실패한다.

이 분리의 과정에서 대부분 포기한다.

분류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양도 그렇거니와 그 구분이 모호해서다.

내가 분노할만한 것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의 구분은 시간이 흐르자 사라진다.

이 시점이 오래지 않아 닥쳐오기에 '와신상담'이 불가능해진다.

내가 왜 거북한 섶에 누워있는지 왜 쓸개를 핥고 있는지 잊게 된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는 자잘하다.

상대의 불안을 상상하거나 불안을 시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강력한 복수는 나의 '불안 없음'(안정과는 다르다)에 집중해 잘 먹고 잘 살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는 존재이니 정체성을 확실하게 수행할 때 완전해진다.

자신의 품으로 복수하고픈 상대를 끌어안는 전략은 고수의 복수방식이다.

이처럼 빈틈이 없어지는 상태가 되면 그것이 완벽한 복수다.


고백컨대, 복수학개론은 사랑학개론의 다름 아니다.

그대가 꿈꾸는 복수가 타인의 파멸과 자신의 독존으로 귀결된다면 로우레벨의 복수다.

적어도 복수 이후의 삶이 이전보다 유의미하게 확장되어야 하이레벨 복수를 한 것이다.

단어 '복수'에서의 복자는 회복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갚아서 관계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좋은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복'이다.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 원수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파라다이스에서나 일어날만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무시무시한 복수가 아닌 아름다운 복수들을 꿈꾸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덧말

모든 부정적인 복수의 결말이 불행한 건 인간이 애초부터 복수를 이행하기에 부적합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수는 입력값과 상관없이 결괏값으로 실패가 나오도록 정해져 있다. 복수가 서툴러서가 아니라 인간이 복수에 임할 때, 정교한 머신에 오류투성이의 데이터를 입력하기를 반복하고 그 결과를 기다린다. 복수에의 유혹은 인간을 더욱 겸허하게 이끄는 일종의 리트머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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