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1
"도마도 갈아놨으니 어서 와서 먹으렴!"
한동안 나도 도마도라고 친근하게 불렀고 토마토는 익숙해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여름에는 강판에 손수 갈아주셨다. 형태를 가진 토마토를 10개를 못 먹어도 갈아놓은 토마토는 20개도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강판 아래 노란 플라스틱 바가지에는 토마토가 즙이 되어 얌전하게 고였고 유리잔으로 옮길 것도 없이 바가지채로 벌컥벌컥 마실 정도로 좋아했다.
밍밍한 물을 잘 마시지 않는 나는 수분섭취를 주로 우유와 토마토로 채우길 즐겼다.
특히 여름에는 예쁘고 달콤한 딸기도 있고 듬직하고 아삭한 수박도 있는데 왜 나는 '도마도'에 환장했을까. 여전히 토마토는 맛있고 내겐 최고의 열매다.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토마토의 매력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자.
토마토는 경계의 열매다.
토마토는 가지과에 속하는 덩굴식물로 채소류로 분류하지만 내게 엄연히 당당한 과일이다.
토마토가 채소냐 과일이냐의 논쟁은 미국에선 200년 전부터 있었다. 원래 과일 Fruit은 '식물의 먹는 부분 중 씨를 포함한 씨방이 익은 것'이라고 규정하는데, 토마토도 씨가 들어 있으니 과일이 맞으나, 미국 법에 '수입하는 과일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데 관세를 걷기 위해 채소라고 분류했다. 이후 대법원의 논리도 흥미롭다.
토마토는 식사로 먹지 후식으로 먹지 않으니 채소가 맞다
토마토는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진다.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채소로 토마토를 꼽았다.
서양속담에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갈수록 의사들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식품이다.
칼로리도 타 과일에 비해 낮으며 먹을수록 항산화 효과가 있어 늙는 속도를 더디게 도와준다.
리코펜 성분이 폐암을 막아주고 성호르몬 활성화하고 정력에도 좋고 숙취해소에도 좋다.
토마토를 먹을수록 병원 갈 일이 없어지니 참으로 의사들이 멸종시키고 싶은 음식 중의 하나일 듯하다.
토마토는 표리부동하지 않는다.
겉과 속이 다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응큼한 과일들이 많지 않은가.
화려한 껍질로 유혹해서는 다른 속을 보이는 과일들의 교활함을 토마토는 가지고 있지 않는다.
참으로 생긴 것도 이름처럼 반듯하고 정직하다.
앞으로 읽어도 토마토 거꾸로 읽어도 토마토는 균형감 있게 이름도 토마토스럽다.
토마토처럼 가까운 이들에게 대해야 한다고 다짐을 한 적이 있다.
설탕과 너무 잘 어울리지만 영양가를 떠나 그냥 풋내 나는 토마토 자체의 식감과 특유의 향을 좋아한다. 껍질을 깎지 않고 베어 물어도 좋은 토마토의 편리함을 좋아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즙이 볼이나 눈으로 튀어 오르는 스릴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한다. 방울토마토보다 그냥 토마토를 좋아한다. (한 번은 가야농장 토마토주스를 먹고 있는데, 친구가 '그거 케첩에 물탄 맛 아니야?'라고 해서 '그러네'라고 토마토 같은 미소로 답했다.) 토마토를 물을 타도 물에 토마토를 타도 좋아한다. 나는 이렇게 토마토를 좋아하는데...
토마토도 나를 좋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