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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31. 2023

바쁘면 멈춤

0353

일이 너무 많아지면 서두르지 않고 멈춘다. 이때의 멈춤이 바쁜 일들을 돌아가게 하는 엔진역할을 한다. 생각대로 일하지 않고 일하는 대로 생각할까 봐서다. 칼자루를 일에게 뺏기는 순간 워커홀릭이 된다. 홀릭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나의 리듬을 벗어나 무작정 홀리게 되는 것은 홀릭의 약점이다.


인터렉티브 콘텐츠를 트랜스 미디어에 접목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지난 기획안 발표 때 기발하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세상에 처음 내놓는 아이디어라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공개할 수는 없으나 거칠게나마 소개하자면 의학, 문학, 심리를 통섭한 인터랙티브 한 콘텐츠다. 훗날 상용화에 성공하면 소개하고 싶다.


올 연말에는 예술과 기술을 매칭한 환경에서 詩를 가지고 한바탕 노니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참여자들을 선발 중이며 장소섭외까지 완료했고 이 행사에 어울리는 셀럽선별 등 확장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 행사 이후에 대한민국은 시를 가지고 노는 방법의 빅뱅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다.


위의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인공지능과 인지심리학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첨단에 발맞추려는 조급함보다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알아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충분히 장악하고 멀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정석을 익힌 후에 잊어버리는 것(정석대로 두지 않는 것)이 바둑기사들의 상식이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너무 짧을 정도로 일과가 바쁘다. 그래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 마저 지워버린다면 나는 그저 바쁜 인간일 뿐이다. 멈추지 못하는 인간은 욕망 기계에 불과하다. 오늘은 제대로 멈추지 못해 밤까지 글쓰기를 미루었더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글을 쓰고 시작한 하루와 그렇지 못한 하루의 무게는 다르다.


가속페달을 너무 밟았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쾌감을 느끼다가 이내 무뎌졌다. 이때 브레이크를 밟았다. 주위가 보였다. 지금의 위치가 분명해졌다. 과정이 온전히 펼쳐지고 목적지에 대한 이미지도 또렷해졌다. 사이드 미러에 앉은 나비가 보였다. 이제껏 달려온 것은 나비의 멈춘 날갯짓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바빠지면 우선 몸을 멈춘다. 몸이 바빠지면 서둘러 마음을 진정시킨다. 속도에 둔감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모든 전원을 일시 오프한다. 효율적이지 못한 듯 보이나 인간은 원래 효율과 무관하게 설계되어 있다. 팔다리를 가지면서 굳이 직립보행이라는 불안한 방식을 택하지 않았나. 더 늦어질 각오는 진즉부터 해왔다.


가만히 멈추어 1분을 견뎌본다. 무한을 느낀다. 고작 60초가 영원과 조우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살아가는 순간과 죽어 가는 순간의 접점을 느낄 수도 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거슬러 올라가 왜 사는가의 근원적인 물음까지 안고 돌아오는 보너스도 얻는다. 24시간을 바쁘지 않아도 나쁘지 않다고 속삭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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