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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30. 2023

각오의 배신

0352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각오는 멈출 거야

각오했던 수많은 날들을 헤아려본다.

해야 할 일을 앞두고 했던 각오들.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기 전에 다졌던 각오들.

마음만 단단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방어력이라 여겼다.

비로소 각오의 속살을 알아차렸다.

각오의 본질은 깨달음이다.

각오는 닥쳐올 것들에 대한 마음의 재정비다.

보다 적극적인 마음의 태도.

나 자신을 능동적이고 유연한 상태로 가동하는 것.

결코 각오는 모질고 고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견고한 것이 아닌 굳어지는 것이다.

딱딱한 것은 그 무엇에도 대처할 수 없다.

가령 매일 글을 쓰겠다는 각오를 했다면,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하는 건 모처럼 품은 각오를 무색하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각오라는 게 이토록 다루기가 까다롭다.

글을 쓰는 것은 내 몸이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마음이 거의 하는 것이다.

마음의 허락 없이는 열리지 않는 문이다.

그걸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기에 직접 쓰면 될 일을 각오라는 마음의 행위를 먼저 한다.

왜 쓰려는가의 물음이 1차적 깨달음이다.

깨닫는 것 또한 거창한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된다. 대체로 나의 밖으로 질문을 던지거나 내가 아닌 곳에서 답을 찾으려니 실천이 어수선하다.

각오가 올바르지 않으면 이유보다 방법에 치중한다. 노하우는 우리를 어느 곳으로도 데려다주지 못한다. 만약 나의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면 가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가야 할 이유를 가지지 못한 탓이다.

이유를 가지지 못한 각오는
 '언제 우리 밥 먹어요'같은 텅 빈 약속이다.

자신에게 자주 빈 약속 아니 빈 각오를 자주 하게 되면 각오의 모서리들이 무뎌져 정작 필요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


각오는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 아니라 이유를 꼼꼼히 자신에게 물어 그것에 대한 마주함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각오들은 배신할 것이다.

각오가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각오했던 내가 미워지고 각오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또 다른 각오를 하게 될 것이다.

각오는 선택처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잘 다루지 못하면 선택장애처럼 각오장애가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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