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n 01. 2023
손없는 날인가. 이사 사다리차 소음이 요란하다. 소리만 들어서는 이사 오는 것인지 이사 가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이사가 연례행사였다. 그래서 나는 모교가 많다. 초등학교는 여섯 개나 된다. 한참을 덜컹거리는 걸 보니 고층으로 혹은 고층에서 짐을 옮기나 보다. 이사를 고민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물건이다. 내 주위의 물건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 이사니까. 나는 동선을 옮기는 것이고 물건은 위치를 바꾼다. 이 과정에서 나는 기분과 리듬이 새로워지고 물건들은 선별된다. 잘 버리는 것이 이사를 잘하는 요령이다. 이사를 하면서 공간의 뒤통수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낯설다. 물건을 들춰내어 옮기는 이사가 아니었으면 전혀 몰랐을 모습이다. 이사가 잦았던 기억이 불안하다. 누군가는 설레는 순간이다. 꼭 새집이 아니어도 이사 가는 마음은 하얗고 새롭다. 다시 멋지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사하려고 내놓은 세간살이들은 변신한다. 집 안에 있을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밖에 내놓자 누추하기 짝이 없다. 낡아서가 아니라 좋은 가구도 그렇게 어색하게 보일 수 없다. 가끔 이삿집이 부끄러워 숨어 있기도 했다. 어린 나에게 이사는 고백과도 같았다. 집에서 혼자 마주하던 물건들을 동네사람들에게 드러내 고백하는 쑥스러운 의식이다. 그것의 크기는 이삿짐을 이사할 집에 내려놓을 때 더 커졌는지 그 크기만 한 떡을 이웃에게 돌렸다. 이삿짐이 많은지 여전히 사다리차는 분주하다. 예전에는 수평이동이 많았는데 이젠 수직이동이 많다. 포장이사도 없던 예전엔 막 다뤘는데 요즘엔 애지중지 다룬다. 안 가겠다고 떼쓸까 봐 놀이기구 같은 리프트에 실어 나른다. 요즘은 사람보다 사람 아닌 것들이 더 존중받는 세상 같다는 푸념을 하기도 한다. 인부의 고함소리가 커지는 걸 보니 점심시간이 가까운 것 같다. 요즘은 행정구역을 넘나드는 먼 이사를 안 하나보다. 고속도로에서 이삿짐을 잔뜩 싣고 고무줄로 단단히 맨 트럭들을 보기 힘들다. 그때마다 이사는 도망 같다는 상상을 얼핏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지긋한 삶을 피해 도망가고 인생이 쫓아오는 추격전 말이다. 사다리차의 소음이 멈추었다. 이제 이사의 절반이 끝났다. 나머지 절반의 풍경은 다른 장소에서 펼쳐질 것이다. 전반전과 후반전이 다른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이사다. 이사하기 전과 이사 한 후의 이야기가 변화하는 것이 이사의 목적이다. 이사는 사건이고 현상이다. 이사의 추억 한 번 가지지 않은 이가 있을까. 이사는 누군가에겐 번거로운 설렘이고 누군가에겐 어쩔 수 없는 탈출의 비상구이고 누군가에게는 살아온 성적표를 공개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이사하는 순간만큼은 삶의 맥박이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