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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했다라는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생각의 근면이 움직임의 근면보다 더 견고해야 해요.
안 하는 것이 결코 손 놓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책상에서 벗어나 침대에서 뒹굴거리거나 산책을 합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빈둥거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 자체를 두고 안 하는 것으로 본다면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 때에 가장 부지런해집니다.
뇌를 배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육체를 농락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분주한 상태에서는 노이즈만 발생하고 아무것도 아닌 불량품만 나옵니다.
물론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성품에 가깝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들도 이 세계에서는 필요합니다.
적어도 예술적이거나 창의적인 행위에서는 어설프게 덤벼 하려는 것이 오히려 장애물이 됩니다.
가끔 샤워 중에 생각이 활성화되어 난감한 경험이 누구나에게 있습니다.
이때 유레카라고 외치며 도망가려는 아이디어의 긴 꼬리를 붙잡고 기록가능한 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한 번 멀어져 버린 생각은 전어를 굽고 고사를 지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의 조각들은 마련하려는 순간 머리를 숨깁니다.
그러니 하려고 폼을 잡는 것은 허공만 휘젓겠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한 발 물러나 무심한 듯 바라볼 때 내 안의 생각들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그저 주어지기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 있기에 철저한 전략과 포석으로 점령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에 문제에 밀착하는 것은 그리 높은 수준의 해결방법이 아닌 듯 보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어린 나는 우리나라가 섬 같았습니다.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처지니까요.
그래서 배낭을 하나 매고 유럽으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몽마르트르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서 있는 나의 생각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융프라우에서의 나는 분명 다른 모양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깊은 생각은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있는 일상을 떠나자 비로소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에 대한 질문들은 챗GPT를 비롯해 세상 그 누구도 적확하게 대답해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마저도 답할 수 없다면 그 질문은 그 자체가 답이나 내가 가야 할 길일지도 모릅니다.
저의 능력은 인위가 묻은 것들에 대한 일은 철저하게 안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무위가 황금알을 낳는다는 뻔한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