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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06. 2023

차라리 무위

0359

저의 능력은

안 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능력도 능력입니다.

행함은 인위와 무위로 나뉩니다.

인위적인 행위는 나다움을 가립니다.

무언가 했다라는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리듬을 헝클어뜨립니다.

어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냐고 나무랄 수도 있겠습니다.

요상한 함정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안 할 뿐입니다.

수동적으로 하는 일은 대체로 몸이 바쁩니다.

바쁘다고 부지런한 건 아니에요.

생각의 근면이 움직임의 근면보다 더 견고해야 해요. 

애써 하려는 것보다 물러나 안 하는 것이 더 많은 결과를 냅니다.

안 하는 것이 결코 손 놓고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책상에서 벗어나 침대에서 뒹굴거리거나 산책을 합니다.

이는 겉으로 보기에 빈둥거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 자체를 두고 안 하는 것으로 본다면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 때에 가장 부지런해집니다.

뇌를 배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육체를 농락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분주한 상태에서는 노이즈만 발생하고 아무것도 아닌 불량품만 나옵니다.

물론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성품에 가깝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들도 이 세계에서는 필요합니다.

적어도 예술적이거나 창의적인 행위에서는 어설프게 덤벼 하려는 것이 오히려 장애물이 됩니다.

가끔 샤워 중에 생각이 활성화되어 난감한 경험이 누구나에게 있습니다.

이때 유레카라고 외치며 도망가려는 아이디어의 긴 꼬리를 붙잡고 기록가능한 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한 번 멀어져 버린 생각은 전어를 굽고 고사를 지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의 조각들은 마련하려는 순간 머리를 숨깁니다.

그러니 하려고 폼을 잡는 것은 허공만 휘젓겠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한 발 물러나 무심한 듯 바라볼 때 내 안의 생각들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그래서 무위를 인위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로 봅니다.

그저 주어지기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 있기에 철저한 전략과 포석으로 점령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에 문제에 밀착하는 것은 그리 높은 수준의 해결방법이 아닌 듯 보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어린 나는 우리나라가 섬 같았습니다.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처지니까요.

그래서 배낭을 하나 매고 유럽으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몽마르트르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기에 서 있는 나의 생각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융프라우에서의 나는 분명 다른 모양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더 깊은 생각은 맞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있는 일상을 떠나자 비로소 내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에 대한 질문들은 챗GPT를 비롯해 세상 그 누구도 적확하게 대답해 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마저도 답할 수 없다면 그 질문은 그 자체가 답이나 내가 가야 할 길일지도 모릅니다.


저의 능력은 인위가 묻은 것들에 대한 일은 철저하게 안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무위가 황금알을 낳는다는 뻔한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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